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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_당신이 궁금해 할 모든 것을 적었다

WiredHusky 2014. 11. 9. 20:16






*막대한 양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반드시 영화를 본 뒤에 읽으십시요.



나는 단 한 번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감명 깊게 본 적이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미래에서 온 안드로이드거나 슈퍼 컴퓨터가 만들어낸 홀로그램이 분명하다. 이 남자의 영화를 보는 건 최첨단 냉장고의 매뉴얼을 읽는 것과 같다. 로봇이 아니라면 이렇게 뻣뻣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는 항성간 우주 여행을 소재로 다룬다. 이는 이 영화가 배트맨, 인셉션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과학 이론을 활용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사전 공부 없이 영화의 내용을 100%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당신의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인터스텔라>의 모든 걸 이해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와 결혼 할 것을 권유한다. 당신의 옆에서 팝콘을 씹는 그 오징어가 세계 상위 0.1% 이내의 천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과 시간의 상대성


<인터스텔라>의 시간 지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알아야 한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시간은 전 우주에 걸쳐 동일하게 흐르는 절대적 물리량이 아니다. 시간은 물체의 속도 혹은 물체에 가해지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 데, 물체의 속도가 빨라 질수록 중력이 강해 질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이 말은 우리가 지구 보다 중력이 10배 강한 행성A로 이사를 갈 경우 10배 느린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편의상 중력의 세기와 시간 지연이 정비례한다고 가정했다). 그렇다고 행성A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입장에선 지구에서 보내는 1년과 행성A에서 보내는 1년은 체감상 완전히 동일하지만 외부 관찰자가 보기에는 행성A의 사람들이 지구인 보다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행성A로 이사간 인류의 수명이 지구인의 10배로 늘어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행성A에서 10년을 산 뒤 지구로 돌아올 경우 우리가 떠날 당시 알고 지냈던 친구들은 거의 죽고 없을 것이다. 시간 지연 현상은 우리를 그저 상대적으로 오래 살게 해 줄 뿐이다.


<인터스텔라>의 초반 밀러 행성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이 같은 시간의 속성을 잘 표현한다.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은 지구에서의 7년에 가깝기 때문에 여기서 3시간을 보낸 주인공이 인듀어런스호에 도착했을 때 성년이 된 가족의 영상 편지를 받게 된다. 


밀러는 이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발견하고 적합 신호를 보냈다. 이 신호를 받자마자 쿠퍼 일행이 출발했다고 가정하면 밀러 입장에선 자신이 도착한 뒤 고작 몇 십분 만에 쿠퍼 일행이 도착한 셈이 된다(쿠퍼 일행이 토성의 웜홀까지 2년을 비행하고 웜홀 통과 후 바로 밀러 행성을 찾았다면 아무리 길어도 3년은 안됐을 거고 1시간이 지구의 7년과 같은 밀러 행성에서 이는 고작 20~30분 밖에 안되는 시간이다). 행성을 탈출하며 브랜드가(앤 해서웨이) 했던 대사가 이해 되는 대목이다.




밀러는 우리가 도착하기 고작 몇 십분 전에 죽었을 거에요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 그리고 슬링샷


영화를 봤다면 '지평선'이라는 단어가 몇 차례 등장하는 것을 봤을 것이다. 이는 사실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을 그냥 지평선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사건의 지평선이란 블랙홀의 중력 경계를 뜻하는 말로 어떤 물체든 이 지점을 넘어가게 되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영원한 암흑 속에서 살아야 한다.


영화 후반부 쿠퍼 일행은 연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건의 지평선을 이용한 중력 슬링샷을 시도한다. 이는 우주선을 사건의 지평선 가까이로 몰고가 안전 궤도로 진입, 일정 시간 비행 후 궤도를 탈출함으로써 궤도를 회전하면서 얻은 가속력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공에 줄을 묶고 빙빙 돌리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이 때 공을 매달은 줄을 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공은 회전 시 얻은 속력을 바탕으로 하늘 멀리 날아가 버릴 것이다. 쿠퍼는 사건의 지평선 궤도 진입 후 인듀어런스호에 도킹한 두 대의 우주선으로 재추진을 하는 데 이 재추진이 바로 공의 줄을 끊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력을 이용한 정보 전달


영화 내내 중력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적은 없기에 나름대로 추측을 해본다.


우선 디지털 정보는 모두 '0'과 '1'로 기술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선의 특정 물체에 중력을 전달하고(1) 전달하지 않는 것(0)으로 원하는 모든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쿠퍼가 머피의 시계 초침을 움직인 방법도 바로 이것). 특히 중력의 전달 속도는 광속이고 전달 거리가 무한대이기 때문에 멀리 나가 있는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할 신호로 중력만한 게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의 아주 작은 물체에 중력을 전달할 만한 정교한 기술이 존재하냐는 것이다. 인류가 이 정도로 중력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플랜A의 실현은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쿠퍼는 블랙홀에 빠진 뒤에도 중력을 이용해 특이점의 관찰 정보를 송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알다시피 블랙홀의 내부에선 어떠한 정보도 빠져나갈 수 없다. 물론 호킹복사라고 불리는 열이 방출되기는 하지만 이 열은 모든 정보가 뭉개져 있는 상태이므로 그것이 가스불인지, 모닥불인지, 샤넬 백을 원하는 여자 친구의 불타는 욕망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가설은 중력이 '중력자'라고 불리는 물체를 주고 받으면서 전달된다는 양자화된 중력 이론을 이용하는 것인데... 여기서부터는 나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니 이만하고 넘어가도 크게 탓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플랜A, 플랜B


플랜B는 명확하다. 인듀어런스호에 수정란을 싣고 가 적합 판정을 받은 행성에서 새로운 인류를 양성하는 것이다. 만 박사와(맷 데이먼) 아빠 브랜드는(마이클 케인) 애초에 플랜A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쿠퍼 일행을 속여 여행에 나서게 한다. 문제는 진실을 알게 된 쿠퍼가 지구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것. 이렇게 되면 만과 아빠 브랜드가 계획한 플랜B의 실행이 물거품이 되므로 만이 쿠퍼를 죽이려 한 것이다. 


문제는 플랜A다. 너무 잠깐 언급되는 바람에 이해하기 힘들지만, 힌트는 아빠 브랜드가 쿠퍼를 로켓 발사대로 데려간 뒤 뭔가 이상한 점을 못느끼겠냐고 물어보는 장면이다. 쿠퍼는 "발사대 전체가 원심 분리기 군요"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플랜A는 강력한 원심력을 이용해 지구의 중력을 상쇄, 엄청나게 큰 우주선 혹은 나사 기지 전체를 들어 올려 적합 판정을 받은 행성으로 여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콜로니는 인류가 플랜A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나의 의문은 원심력으로 어떻게 지구의 중력을 상쇄시킬 수 있냐는 것이다. 사실 지구의 중력을 상쇄하기 위해선 우주선이 아니라 지구 자체의 자전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 이 경우 지구 바깥 쪽으로 큰 원심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물체를 지구 안 쪽으로 당기려는 중력을 상쇄할 수 있다. 물론 우주선 주변에 자석을 달아 빠르게 회전시키면 자기장이 발생해 중력을 상쇄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쓰기 위해 중력 방정식이나 블랙홀 특이점의 관찰 정보가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이 문제는 다른 누군가의 해설에 맡겨야 할 것 같다.






'그들'의 존재와 영화의 결말


특이점에서 5차원 큐브를 만난 쿠퍼는 이것이 미래의 인류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완벽한 착각이다. 생각해보자. 미래에 인류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문제가 해결 되어 인류가 살아 남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미래인에게는 과거의 인류를 도울 아무런 이유가 없다. 물론 미래의 인류가 다음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면 그들이 과거에 개입하려는 이유가 성립된다.


인류는 어찌저찌 살아 남아 웜홀을 만들고 블랙홀 특이점에 원하는 시공간을 만들어 놓을 만큼 기술을 발전시키기는 했으나 여전히 옥수수 재배의 미스테리는 풀지 못했다. 이제 우리가 먹을 식량은 50년 치도 남아 있지 않다(영화에 따르면 웜홀이 생긴건 48년 전이다). 그러니 웜홀을 뚫어 과거 인류에게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지구를 떠나기 위해선 중력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데 지금 상황이 너무 급박하니 직접 알려주기보다는 블랙홀 특이점에 그 해를 숨겨 놓겠다.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말아라. 너희들도 정답을 찾는 재미는 누려야 하지 않겠니?


뿡야!


만에 하나 5차원 큐브가 인류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쿠퍼 일행과 같은 시공간 차원에 존재하는 인류는 아닐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우주와는 완전히 별개인 또 다른 우주, 즉 평행우주의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만약 미래인이라면 나는 결코 과거에 개입해 미래를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바꾸려는 과거가 현재와 멀수록 역사의 변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내가 과거를 바꿨다고 내가 원하는 미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류의 영화를 보면 과거의 특정 사건 하나를 바꿀 경우(물론 결정적 계기이기는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무슨 짓을 벌이더라도 미래가 확정되는 것처럼 그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머피에게 방정식의 해가 전달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의 사건은 톱니바퀴 물리듯 착착 진행되어 원하던 미래가 올거라 생각하지 머피가 그 해를 스위스 개인 금고에 넣어두거나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다 감전되어 죽는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미래가 이런 식으로 구성되는 게 맞다면 미래를 바꾸기 위한 우리 노력이 사실은 정해진 미래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거대한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인터스텔라>는 중력이라는, 인류 최강의 속박을 벗어 던지고 기어이 우주로 향하는 인간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 놀란에게 이와 같은 운명론은 모욕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결말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124세가 된 쿠퍼는 콜로니에서 머피를 만난다. 이 때 머피는 쿠퍼에게 브랜드가 도착한 별로 가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분명 '우리는 그곳으로 가지 않겠다'는 뉘앙스가 있었다. 콜로니의 환경도 이 주장을 뒷받침 한다. 만약 전 인류를 새로운 행성으로 이송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콜로니 안에 밭과 집을 만들 게 아니라 수 백, 수 천만의 동면 장치를 설치했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콜로니는 토성 궤도를 돌고 있었을까? 웜홀을 통과해 새로운 행성으로 가기 위함인가? 아니다. 붕괴된 특이점에서 빠져나온 쿠퍼가 웜홀을 통해 토성 궤도에 등장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머피는 쿠퍼를 구조하기 위해 수 년 혹은 수십 년 간 토성의 궤도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좀 전에 과거의 특정 사건이 바뀌면 이후 개인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미래가 고정되는 것이냐고 물은 바 있다. 만약 머피가 콜로니를 이끌고 웜홀을 건너 새로운 행성에 도착했다면 온 힘을 다해 지구 멸망이라는 운명을 거부한 머피가 새롭게 확정된 밝은 운명에는 아무 스스럼 없이 순응하는 웃지 못할 결과를 낳는다. 인간은 자유의지 없이 '그들'이(신, 외계인, 평행우주의 인류 등) 인도하는 미래를 따라야만 하는가?


머피는 이러한 운명을 거부한다. 


머피는 콜로니를 끌고 새로운 행성으로 가지 않고 아버지만을 보낸다. 쿠퍼와 브랜드는 그 곳에서 새로운 인류를 성장시킬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자란 인류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기꺼이 서로를 돕고 협동하는 신인류로 성장할 것이다. 이를 위해 오염된 우리 구인류는 영원히 우주를 돌며 살아가겠다.


진보는 어둠에 항복하지 않고 분노를 외치는 인류의 노래에서 탄생한다. 절대 어둠에 굴복하지 말라. 그 어둠은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믿는 모든 종류의 운명론이다.



놀란이 노래합니다, 오로지 실재만이 실재를 전달해요


배트맨 시리즈와 인셉션으로 30억 달러(3조 이상)가 넘는 수익을 올린 탓에 영화 제작에 관해서라면 얼마든지 돈을 꺼내 쓸 수 있는 ATM기를 선물 받은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번에도 엄청난 규모의 세트와 Non-CG 특수 효과를 선보인다.


그는 인터스텔라의 광활한 옥수수 밭을 찍기 위해 3년 동안 30만 평의 땅을 사들여 직접 옥수수를 심었고,





무독성, 생분해 골판지 C-90을 갈아 실제 모래 폭풍으로 사용했으며, 





이 정도 우주선은 기본으로 제작했는가 하면,





아일랜드 로케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모든 사실이 크리스토퍼 놀란을 신화화 하는 데 한 몫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재밌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인터스텔라>는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내용과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웬지 재미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소개팅에서 만난 못생긴 남자가 알 수 없는 짓을 하면 변태, 오타쿠, 찌질이가 되지만 잘생긴 남자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면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뿜어내는 매력남이 되는 것과 같다. <인터스텔라>가 딱 후자의 경우다. 그러니 이 영화에 광분하여 난리를 치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의심의 눈초리로 보라. 의심은 광명을 안겨줄지니, 저리로서 사기꾼과 멍청이와 오타쿠를 구분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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