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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지지 않는 적들 - 김훈의 '칼의 노래' 본문

베어지지 않는 적들 - 김훈의 '칼의 노래'

WiredHusky 2013. 10. 13. 16:22




칼의 노래

저자
김훈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1-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4백 년 전의 이순신을 다시 만나다!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살면서 다시 읽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책을 만난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벼르고 벼르다 십년만에, '칼의 노래'를 다시 집어 들었다. 





베어지지 않는 적들


임진년, 왜란을 맞은 후에도 조선의 당쟁은 멈추지 않았다. 육군은 파죽지세로 깨져나갔고 경상도의 수군은 유명무실했다. 임금은 서울을 버리고 평양을 버리고 의주로 향했다. 조선의 모든 땅이 으깨지고 백성이 부서질 때 단 한차례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으며 나라를 홀로 지킨 장수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었다. 왜군은 감히 이순신의 앞바다를 경유해 서해로 나아가지 못했고 나아가지 못한 적은 고립되어 썩어갔다. 조선이 패망하지 않은 이유는 이순신이었다. 왜란 6년째인 정유년 2월, 조정은 그런 이순신을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해 서울로 압송한다. 죄목은 임금을 기만하고 가토의 머리를 잘라오라는 조정의 기동출격을 거부했다는 것. 왕좌에만 연연했던 무능력한 임금과 무능력한 임금을 좌우로 흔들던 당쟁의 합작품이었다.


이순신이 나간 자리를 원균이 대신했다. 그해 7월, 아둔한 도원수 권율은 원균의 함대를 앞세워 가토의 머리를 자르러 갔다. 이순신이 없는 바다에서 원균은 참패했다. 삼도수군은 궤멸했다. 백의종군하여 남해를 정찰중이던 8월,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다. 그러나 삼도의 수군을 통제해야할 이순신에게 더 이상 수군은 없었다. 남아있는 병사를 수습하여 권율의 휘하로 들어가라는 조정의 명령에 이순신은 이러한 장계를 올린다.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임금은 이순신의 벨 수 없는 적이었다. 또한 12척의 배로는 바다를 빼곡히 뒤덮은 왜군을 벨 수 없었다. 이순신은 벨 수 없는 적들을 망토처럼 두른채 12척의 배를 끌고 나가 330척의 적선을 마주한다. 역사는 이 전투를 명량 해전이라 기록했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해도 죽을 것이다


1596년, 선조는 의병장 김덕령을 잡아 죽였다. 그는 오천의 병사를 일으켜 영남의 여러 고을을 온전히 지켜낸 영웅이었다. 그 때 홍의장군 곽재우도 연루돼 고초를 겪었다. 이후 곽재우는 군사를 해산하고 산으로 들어갔다. 선조는 사직을 잃을까 두려워했고 사직을 지켜준 신하 또한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의 사직이 적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그 사직이 영웅된 신하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또한 두려워했다. 그는 두려움이 일때마다 닥치는대로 죽였다. 


임금은 차가운 북쪽의 땅으로 피난을 간 뒤에 자주 하얀 소복을 입고 대청에 주저 앉아 능욕당한 사직을 향해 울었다. 울음은 곧 장려한 문장의 교지가 되어 이순신의 앞에 내려졌다. 이순신은 교지의 울음 속에 자신의 죽음이 잉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살기위해 이겨야했는데 승리로 얻은 삶은 곧 그의 목에 내려지는 칼이었다. 그는 패해도 죽었고 이겨도 죽었다. 그는 죽어도 죽었고 살아도 죽었다. 이순신은 이 모든 싸움이 끝나는 날 자신이 죽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는 그에게 합당한, 온전한 사지를 찾아 바다를 헤맸다. 



인간 이순신


우리는 영웅의 후광에 취해 인간의 그림자를 놓칠 때가 많다. 거듭되는 말 속에서 인간은 사라지고 신화만이 남는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은 유난히 몸이 허약한 장수였다. 그는 설사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구토하는 남자였다.


400년도 더 지난 지금도 나는 적들의 적의를 뚜렷히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친구를, 형제를, 부하를, 상사를 잃은 적의 적의를 말이다. 왜군에게 이순신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또한 적개심의 대상이었다. 왜군은 결코 이순신을 그냥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살의가 해일처럼 몰려드는 바다에서 고작 12척의 배를 끌고 330척의 적을 맞아야 하는 이순신은 어땠을까? 그 적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유유히 노를 저어 나갈 수 있었을까? 모든 걸 훤히 꿰뚫 수 있는 사람일수록 마음은 더욱 무참한 법이다. 김훈은 무참함을, 자기편의 적의와 적의 적의 사이에서 충만해가는 그 무참함을, 그 역시 무참한 마음으로 눌러담아 사라져버린 인간의 그림자를 쌓아올렸다. 그리스의 대가 니코스카잔차키스가 '최후의 유혹'에서 신이 아닌 인간 예수를 그렸듯, 김훈은 인간 이순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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