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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의 영희 씨_출근길 라디오 소리처럼 본문

옆집의 영희 씨_출근길 라디오 소리처럼

WiredHusky 2017. 3. 5. 10:15






리뷰를 쓰다보면 잘 모르겠는 책에 오히려 호들갑을 떨며 칭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대개는 다른 소설가의 추천사를 읽거나 평론을 읽고 난 뒤,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깨우친 다음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옆집의 영희 씨>는 SF 작가인 배명훈의 추천을 통해 손에 들었다. 알라딘의 젊은 작가 인터뷰 코너에서 그가 이 책을 소개한 것이다. 나는 배명훈의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고 그가 누군지도 알지 못하지만 왠지 그의 추천에 엄청난 신빙성이 느껴졌다. 본디 설득이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일. <예술과 중력가속도>라는 책을 쓴 사람이라면 그 추천도 범상치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기꺼이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고 그 범상함에 놀라고 말았다.


이 책이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라는 것도 손에 들고서야 알았다. 청소년문학의 특징은 뭘까? 성장이 있어야 하나? 흥미로워야 하나? 상상력을 자극해야 하나? 읽기 쉬워야 하나? <옆집의 영희 씨>는 뒤 두 개에 해당한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읽기가 쉽다. 아주 소프트한 SF. 일상에서 벌어질 법한 소소한 일들이 우주라는 공간에서 펼쳐진다. 그런데 청소년이라고 무조건 쉬운 걸 좋아할지는 의문이다. 이미 다양한 우주에서 매일 매일 수 없이 많은 전투를 치뤄내는 그들에겐(시중에 나오는 게임들을 보라!) 오히려 심심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 소설은 차라리 어른을 위한 소설이다.


영희 씨의 감성을 느끼기 위해선 어느 정도 삶의 흔적이 필요하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사이. 그러니까 삶의 흔적이 하나둘 마음에 생겨 그것이 점점 아려오지만 아직 두꺼운 딱쟁이는 지지 않아 부드러움을 간직한 사람들.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이 소설은 평양 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처럼 더럽게 맛이 없을 수도 있다.


확실히 여자 작가들이 잡아내는 감정의 섬세함은 남자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것 같다. 여자들끼리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뭐 이런 얘기까지 하나, 뭐 저런 일에 화를 내나 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자들의 감성이 훨씬 섬세하기 때문이다. 번개처럼 번쩍하고 나타나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만이 강렬한 게 아니다. 이 섬세함을 느끼고 나면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도 몇 날은 파장을 일으킬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는 박준 시인의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 반은 그랬고 반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아직 정소연 작가가 지닌 섬세한 감정의 돌기를 갖지 못한 것 같다. 많은 이야기들이 그저 출근길 라디오 소리처럼 흘러가 버렸다. 속이 편안해지는 음식을 먹었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허기. 이 묘한 감정이 공존하는 게 바로 <옆집의 영희 씨>다.


가장 큰 수확은 SF라는 장르의 매력을 확실히 깨달았다는 것이다. 읽는 재미가 아니라 쓰는 재미 말이다. SF는 우주선이 성층권을 넘어 우주로 도약하듯 인간의 인식을 좁은 우리에서 꺼내 우주로 쏘아보낼 수 있다. 물리적 도약이 과학의 역할이라면 정신적 도약은 분명 SF의 일이다. 극단적 가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식의 전환. 그 쾌감은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발견케 한다. 이 가능성 안에서 나는 인종차별, 빈부격차, 남녀 평등, 문명의 충돌 등 온갖 인간의 문제를 더 첨예하게, 더 완벽하게, 더 재미있게 그려낼 수 있다. 세상의 이면을 꿰뚫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아예 안과 겉을 뒤집어 모두가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SF의 힘임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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