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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로마사_만화 인문서의 전형

WiredHusky 2017. 3. 12. 11:21





로마사를 만화로 읽으면 더 재밌을까? 확실한 건 더 쉽다는 것이다. 모든 심사숙고와 긴 글, 힘들여 얻고자 하는 게 조롱거리가 된 요즘 시대엔 반드시 알려야 할 것을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전달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만화가 정말 쉬운가 하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일반 인문서라면 페이지에 페이지를 이어 장광설을 늘어놔도 될 일을 만화는 분절된 컷으로 압축 제공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드러난 공백은 읽는 사람의 상상력으로 채우거나 다른 서적을 읽어 보충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만화 인문서는 모두 퀴즈쇼 출전을 대비한 참고서나 점심 시간에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쏟아내는 부장님의 잡지식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이 책 하나로 로마사는 끝 이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 게 좋다.


만화 로마사는 그간 만화 인문서들이 보여준 전통을 잘 따르고 있지만 그만큼 참신한 면은 없다. 연출적으로는 '먼나라 이웃 나라' 보다는 '고우영의 역사 만화' 시리즈에 더 가깝다. 유치한 아재 개그가 전반에 깔려 있지만 이상하게 어색한 점은 없다. 단, 이 개그 코드가 어느 정도의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만화적 연출과 역사적 사실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부분도 아주 간혹 나타나기 때문이다.


작화 또한 참신한 면은 없다. 친숙한 SD 스타일 캐릭터들이 컷을 채운다. 정보 전달이 목적인 만큼 잘게 잘게 컷을 구성한다. 지문은 당연히 많고 보충 설명을 위해 많은 각주를 제공하기 때문에 의외로 읽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만화 인문서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책도 만화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 재미가 있는 듯 하면서도 재미가 없는 것 같은 묘한 느낌. 이 한계는 만화를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전달해야 할 '정보'를 정해 놓고 이를 만화로 그려낸다. 초점이 정보에 맞춰져 있으니 만화 특유의 매력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정보'를 '이야기'로 대체하면 완전히 다른 만화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굳이 제목도 <만화 로마서>가 아니고, 삼국지를 재해석한 <창천항로>나 진나라 역사를 그리는 <킹덤>처럼 새롭게. 그랬다면 '만화지만 훌륭한 책'이 아니라 그냥 '훌륭한 책'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에겐 요코하마 미츠테루의 만화 역사서 같은 좋은 전례가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화 로마사>는 출판사에 의해 철저히 기획된 책이다. 편집인들이 편집 의도를 잘 따라줄 무명 작가를 고용한다. '먼 나라 이웃 나라' 같은 대박을 한 번 내봅시다. 이해는 된다. 그저 다음에는 로마사에 깊은 애착을 가진 만화가가 그리는 진짜 만화가 보고 싶을 뿐이다. 주인공은 매번 죽을 수 밖에 없으니 새로운 서술 방식을 도입. 로마 역사 그 자체를 인격화해 마치 자신의 옛 일을 회고하는 형식이라면 꽤 매력적이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참신한 면은 없지만 <만화 로마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왜 지금 로마사 인가?' 하는 질문에 시의 적절한 답을 내주기 때문이다. 1,000년도 넘는 세월 동안 수 많은 정복 사업을 벌였음에도 관용과 포용으로 요약되는 그들의 이민족 융합 정책은 전 지구의 역사를 둘러봐도 비교가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다문화 사회, 인권의 사각 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 문제, 또는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지역간 대립을 봉합할 수 있는 실마리를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로마사라는 중요성과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관련 서적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유일할 정도로 그녀의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도 크다. <로마인 이야기>를 싸잡아 폄하할 수는 없지만 군국주의 일본을 찬양하고 과거사 청산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대동아 공영권, 나아가 약육강식을 신앙으로 갖는 작가인 만큼 그녀의 책은 아주 신중하게 읽혀야 한다. 하지만 이 <만화 로마사> 같은 반대편의 책이 없다면 사람들은 <로마인 이야기>에 담긴 위험한 생각을 아예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다양성은 사회, 문화, 정치를 막론하고 어디서나 중요한 가치로 지켜져야 한다.


쓰다보니 나도 이 책의 가치를 정확하게 가늠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간만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꺼내봐야겠다. 이 두 책의 차이가 저자의 의도만큼 확실히 드러난다면, 우리에겐 그 보다 값진 경험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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