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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_가깝지만 생소한 역사

WiredHusky 2017. 11. 12. 10:38





이 책을 끝으로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는 완전히 막을 내린다. 나는 조선 왕조 실록과 세종대왕 실록을 읽고 일제강점기로 넘어왔는데 개인적으론 이 책이 가장 지루했다.


본기를 편년체로, 이후 열전을 덧 붙이는 방식으로 단원을 마무리하는 건 시리즈 전체가 대동소이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 책은 본기와 열전의 내용이 많이 겹치는 기분이다. 그것도 단락을 넘나들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일제강점기는 왕조실록이 기술한 시간보다 훨씬 짧고 따라서 강점의 시작부터 끝까지 생존해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건과 인물이 중복 등장할 수 밖에 없었지 않나 싶다.


내가 이 책을 지루하다고 생각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내가 이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역사 교육은 대개 이 시점이 본격화 되기 전에 끝나버린다. 안창호, 안중근, 김좌진, 김구 우리가 거론할 수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뻔하디 뻔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빈약한 역사 교육을 반증한다. 나는 때때로 그 시대에 대한 우리의 분노가 정확히 누구, 어떤 대상을 향한 것인지 잘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대상없는 분노는 그저 우리를 미친 사람으로 보이게 할 뿐 누구에게, 왜, 어떤 반성을 받아내야 하는지, 그 행동의 방향을 정확하게 가리키지 못한다. 우리의 과거는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채 뚝뚝 피를 흘리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 어쩌면 그 이유가 주변국의 뻔뻔함이 아니라 우리의 빈약한 역사 인식에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째서 강점기에 대한 드라마는 나오지 않는 걸까? 따지고 보면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한 많은 시절 아닌가? 이야기가 쏟아져도 수백 개는 쏟아질 수 있는 시기다. <야인시대> 같은 드라마가 있기는 했으나 역사 드라마라기 보다는 그냥 주먹질 얘기에 불과했다. 일제가 철수하면서 당시의 역사를 철저히 지웠거나 조금 음모론을 덧붙이면, 그 역사가 대중 속으로 깊숙히 파고들어가는 걸 원치 않는 권력 집단이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그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정확하게 배워 알고 있었다면 이 책은 이 정도로 지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인물 처음 들어보는 사건이 내러티브 없이 단순 사실만으로 채워지면 아주 지루한 보고서가 될 수 밖에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고, 반성해야 할 사실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은 기존 시리즈의 구성을 완전히 탈피했어야 했다. 사람들의 흥미를 확실히 끌 수 있는 주제는 당시의 친일파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추적이다. 이대 초대 총장인 김활란이 대단한 친일파였다는 사실과 그 유명한 사립명문 휘문이 친일파 민영휘가 설립한 재단이라는 말은 우리의 인식을 깨우기에 충분하지 않은가?(물론 현재 휘문의 이사장은 민영휘의 셋째 아들의 후손으로 친일 행위로 축적한 재산을 찾기 위해 국가와 소송을 벌이는 첫째 자손들과 명백히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쐐기를 박으려면 근대 자본가들이 자본을 축적한 방식과 그것이 현재 어떤 회사, 어떤 집단의 재산으로 승계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일이 너무 방대하고 까다로우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한 권의 책에 담기엔 적합치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시리즈와 결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말이다. 그러나 이유가 어쨌든 이 책은 상당히 아쉽다. 가장 정열적으로 다뤄야 할 36년이 단순한 사실의 나열로 그치는 건 이 책의 팬들에게 강한 아쉬움을 남길 게 분명하다. 작가가 수 십년간 쏟아부은 땀과 노력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일제강점기를 한국의 근대사로 봐야할지 망국의 왕조사로 봐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도 큰 트라우마라 어두운 단지 밑에서 악취나는 시간을 꺼내 세세히 분류하고 파악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읽는 사람이기에 이런 책이 더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너무나 쉽게 말한다. 윤동주가 쉽게 씌어진 시를 창피해하듯 나는 이 말을 너무나 쉽게 꺼내는 내가 창피하다. 하지만 읽는 것, 그래서 깨우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 정도인 것 같다. 부족하지만 이렇게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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