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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_기자와 소설가

WiredHusky 2018. 6. 3. 10:22






기자 출신 소설가의 장점이 그대로 드러난 책이다. 한때는 기자였으나 이제는 문학계의 내부자, 그것도 대단히 촉망받는 젊은 작가가 된 탓에 그의 르포는 별다른 견제나 경계없이 핵심을 파고든다. 그의 소설에 실망한 사람이라도 이 르포만큼은 눈여겨볼만하다.


장강명은 이 책에서 등단 제도가(신춘문예 및 장/단편소설 공모) 갖는 장점과 폐해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존재하는 이 제도는, 끼리끼리 주고받는 안방잔치라든가 공평하지 못한 심사제도, 심사위원단이 원로들로 구성돼 참신하고 젊은 작품이 나올 수 없는 구조라는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사실은 이 제도가 바로 그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공모가 없던 시절엔 등단하려는 사람은 유명한 소설가 또는 시인의 문하생이 되어 열심히 글을 갈고 닦다가 스승의 추천에 의해 등단해야만 했다. 일종의 도제 시스템이자 길드인 셈인데, 참나, 현대의 등단 제도를 혐오하는 골수 비판자라 하더라도 이런 과거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아가 장강명은 이 등단 제도를 공채 채용과(이 역시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 연결한다. 현대의 공채 제도가 지연, 학연을 이용한 알음알음 취업, 그로인한 파벌 형성을 막기 위해, 또 나이가 어리든 많든, 남자든 여자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 고안된 제도라는 점은 등단을 위한 공모 제도와 상당히 흡사하다. 그리고 이는 사실상 고려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과거 시험과도 연결된다.


이들 제도의 문제점은 첫째, 사회적 낭비가 심하다는 점이다. 소설가가 되려면, 회사원이 되려면, 관료가 되려면 이 시험을 통과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보니 경우에 따라 아주 오랜 시간(이제는 사라진 사법 시험을 떠올려보자) 여기에만 매달리는 낭인들이 생겨난다. 등단이나 과거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는 일반 기업의 공채 채용 또한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취업이 안돼 휴학을하거나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경우, 다른 회사에서 몇년을 일하다 다시 공채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 등등. 그래서 요즘 신입사원들은 대부분 나이도 많고 '경력'이 있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런 사람들과 경쟁해야하니 진짜 신입들은 결국 고배를 마셔야하고 그 고배가 후배들에게 전달되는 속도는 가속화된다.


둘째, 이런 제도가 정말로 혁신적인 인재를 뽑는데는 대단히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그 세계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핏'을 갖춰야만한다. 사실 이런 제도는 한쪽으로 특출나게 뛰어난 천재(또는 괴인, 또는 괴물)를 뽑는다기 보다는 그 집단과 맞지 않는 사람을 걸러낸다는 성격이 더 강하다. 대단한 창의력과 개성이 요구되는 것처럼 보이는 문학계와 영화계에서도 '공모전용 작품'이라는 말은 이미 널리 통용된지 오래다. 제도는 최대한 많은 고기를 잡겠다고 그물코를 조이고 더 넓게 펼치고 더 빠르게 달려보지만 배보다도 빠르고 그물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는 똑똑한 고기는 모두 놓치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은 필연적으로 역동성이 떨어지고 그 안에서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는 인재가 나오기는 요원해진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을 왜 유지하는걸까? 단점만 보면 마치 지옥의 대마왕처럼 보이는 이 제도들에는 사실 꽤 많은 장점이 있다. 앞서 말했지만, 우선 누구나 도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꽤나 공평하다. 고시 낭인을 없애겠다고 도입한 로스쿨 제도가 실제론 엄청난 등록금으로 인해 있는 집 자제만 갈 수 있다는, 그래서 현대판 음서제도가 됐다는 비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두번째는 이런 제도를 통해서 배출된 인재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렇게 뽑은 인재들을 데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성장을 이뤄왔다. 장편소설공모전이 한때 문학계에 르네상스를 몰고온 적도 있었다. 이런 제도들이 극소수의 아주 훌륭한 인재를 뽑는데는 미숙할지 몰라도 상당수의 우수 인재를 걸러내는데는 꽤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장강명은 결국 '입단 제도'의 개선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제도를 전부 없앤다고 각계각층에서 진정한 인재들이 발굴될까? 문제는 들어가기는 어려우나 한번 들어가기만 하면 신변의 안전과 미래가 '영원히' 보장되는 그 집단 자체에 있는 것이다. 문예지나 칼럼, 책을 소개하는 TV쇼의 패널엔 오로지 등단 작가만이 참여 가능하다. 등단 이후 단 한 편의 작품도, 단 한 권의 책도 출간하지 못한 작가더라도 말이다. 등단과 사법, 의사 고시 등은 한번만 합격하면 평생 그 자격이 유지된다. 한번 등단한 작가는 등단 작품이 표절이 아닌 이상 영원히 그 자격이 유지된다. 온갖 범법 행위를 저질른 저지른 변호사나 성추행으로 징역을 받은 의사라 할지라도 변호사 협회나 의사 협회에서 제명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 시험 방법을 바꾸는 건 이 집단으로 들어가는 문을 고작 동쪽에 낼 것이냐, 서쪽에 낼 것이냐 하는 문제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집단들의 속성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장강명의 주장은 간단하다. 그들의 능력을 투명하게 알 수 있는 조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문학의 경우 질 좋고 방대한 리뷰들)예컨대 심장병 수술을 가장 잘 하는 의사가 누구인지, 어떤 변호사가 명예훼손과 관련된 재판 승률이 가장 높은지, 어떤 작가가 추리 소설을 가장 재미있게 쓰는지 명명백백하게 알아볼 수 있다면 왜 사람들이 의사나 변호사의 출신 학교, 그들이 현재 어떤 병원과 로펌에 속해있는지, 그들이 거기서 어떤 직급을 갖는지, 그 작가가 어디서 등단을 했는지, 그가 어떤 문학상을 받았는지를 따지겠는가? 정말로 이런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우리는 어떠한 시험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험은 그저 자격을 검증하는 것으로만 그치고 모든 건 자격을 얻은 뒤 그 바닥에서 발휘하는 실력을 토대로 결정된다. 이게 안되니 각 단체는 자신의 성벽을 높이는데만 집중하고, 그 안에 들어온 사람이 사고를 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숨기고(그래야만 성벽의 공신력이 인정되니까) 사람들은 '아 저렇게 높은 기준을 통과했으니 그들을 믿어도 되겠구나'하는 근거없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장강명이 제시하는 대안이 실제로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의 분석 능력과 취지에 대해선 대단히 공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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