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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된 시장_인간이 변한걸까? 시장이 강해진걸까? 본문

신이 된 시장_인간이 변한걸까? 시장이 강해진걸까?

WiredHusky 2018. 7. 1. 10:34





<신이 된 시장>이라는 제목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우선 시장을(market)을 시장(mayor)으로 읽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본 순간 그렇게 오해했고 꽤 흥미로운 '소설'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이 책이 말하는 시장(market)은 시장(mayor)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제목에서 우리는 현대 경제 체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조를 섞어 던졌던 말이 기억난다. 정치 권력은 이제 경제 권력의 노예가 됐다(명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의미였던 것 같다). 바야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쟁취한 '물신'의 등장. 물신의 지배 아래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몇몇은 레지스탕스를 조직하여 아직 영생을 얻지는 못한 물신에 마지막 비수를 꽂아 넣으려 한다. 오공의 머리에 금고아를 씌우는 삼장처럼, 양손에 목줄과 족쇄를 들고 폭주하는 물신을 잡으려 한다. 그렇다면 <신이 된 시장>은 레지스탕스를 모집하는 공고문일까?


내 기대는 또 한번 박살났다. 이 책은 시장의 부패한 이면을 들춰 사람들을 자각시키고 그들의 마음 속에 저항의 씨앗을 심으려는 의도가 없다. 이 책은 저항의 마음보다는 지적 호기심의 향취를 따라 제목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밝힌다. <신이 된 시장>은 시장이 신성화 되가는 과정을 낱낱히 파헤치기보다는 현대의 시장이 얼마나 신과 닮았는지를, 현대의 신이 얼마나 시장을 닮으려 하는지를 밝힌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시장과 신이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깨닫고 놀라게 된다. 시장은 늘 신과 함께였다. 신약 성서에서 시장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대목을 떠올려보자. 예수가 성전 앞에 줄지어선 장사치들의 좌판을 뒤엎으며 그들에게 내뱉었던 독설을 말이다. 중세로 가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쇼핑몰이 바로 성당을 마주한 길가를 따라 형성되는 걸 볼 수 있다. 과거엔 성당 건축물이 인류 최대의 엔터테인먼트였다. 높은 천장, 색색의 빛으로 스며드는 스테인드글라스, 사방을 채운 아름다운 벽화들. 오늘날 대형 쇼핑몰은 정확히 고대 성당의 유산을 계승한다. 이뿐인가? 신자유주의자들이 IMF와 세계은행을 이용해 온갖 나라의 시장을 개방하려는 노력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된걸까? 과거에는 고작 신에게 기생하여 자기 생명을 유지하던 시장이, 어느새 신과 마주 앉아 서로의 이익을 논하더니, 이제는 도리어 신을 몰아내고 그 왕좌를 차지하게 된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걸까?


결국 지상의 신은 인간문화의 산물일 뿐이고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흥망성쇠의 운명을 따라 자기 생을 다하는 것일까? 인간은 지구상 그 어떤 생명체 보다도 자기 입맛에 따라 사는 동물이다. 오늘날 우리는 좌판을 발로 차며 그들에게 도덕적 각성을 촉구한 예수의 말씀보다는 그 좌판을 어떻게 채워야 더 많은 상품을 팔 수 있는지 알려주는 시장의 말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예수의 분노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물신은 21세기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2018년에도, 서기 30년에도 '시장에 쏠려 있었던' 것이다. 


이 쏠린 마음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나타났을 때부터 함께했을지 모른다. 달라진게 있다면 한때 신의 말과 심판을 두려워했던 우리가 지금은 주택담보대출과 카드 연체를 더 두려워한다는 것. 오늘날 신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물신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 축복을 내리고 그것이 늘 우리와 함께 하기를 기도해 주는 것 뿐이다.


인간이 변한걸까? 아니면 시장이 강해진걸까?


다음엔 꼭 이 질문의 답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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