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PXsociety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_아직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 본문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_아직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

WiredHusky 2018. 7. 8. 09:37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에는 서른여섯 편의 소설이 담겨있다. 7, 800페이지 짜리 책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고작 260페이지가 넘는 짧은 단편집이다.


2페이지에서 3페이지, 심하면 한 페이지 만으로 끝나버리는 초단편 소설을 읽으며 들은 생각은, 참으로 부럽다는 것이었다. 천편일률, 1만 6천자에 끼워져 있는 우리 나라 단편 소설들이 안쓰럽기도 했다. 코르셋에 비명을 지르는 구시대의 여자들처럼, 소설이 내지르는 고통의 비명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어떤 이야기들은 섬광처럼 지나가야 한다. 할 얘기를 다했으면 그게 단 한 문장 뿐이더라도 소설은 펜을 놓고 책상을 떠나야 한다. 규격을 맞추기 위해 구질구질 이야기를 늘이는 건 단어의 낭비다.


그러나 두세페이지 짜리 소설들로 창작 활동을 계속해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기적인 연재 코너가 있을까? 매회 분량을 맞춰야 할테니 그건 어려울 것이다. 이 정도 작가가 개인 블로그에 작품을 올리진 않을거고, 그렇다면 오직 단행본을 통해서라는 건데 전세계적으로 불황인 출판업계, 그것도 비주류에 속하는 단편 소설이 전세계의 심을 받는다는 건 이 책의 저자 에트가르 케네트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타일과 주제 의식, 기발한 상상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그러나 나는 이 책의 주제 의식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도저히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는 소설도 많았다. 외국에선 현대인의 실존적 혼란, 인간의 어두운 그림자, 부조리 등을 언급하며 이스라엘의 카프카 혹은 고골로 평하는 모양인데 나에겐 이런 것들이 그닥 중요하지 않다. 어떤 작가가 카프카에 비견된다고 해서, 혹은 그가 부조리를 다룬다고 해서(물론 후자는 검토해볼 여지가 있다) 이야기가 더 재밌어지는 건 아니다. 나에겐 스타일이 훨씬 중요하다. 그것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주제를 종이에 써서 눈 앞에 들이미는 게 아니라 어렴풋한 인상을 남긴다. 인상은 늘 실체보다 오래남고 시간에 따라 하늘하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건 기발한 상상력이다. 이야기를 읽으며 "아, 세상엔 아직도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가,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이토록 많구나." 하는 충격을 주는 쪽이 나에겐 진정 위대한 소설이다.


그런 면에서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말 그대로 낯선이의 방문이 선사하는 신선함과 떨림을 아낌없이 선사하다. 마치 마그리트 그림 속의 오브제들이 가득한 방으로 초대된 것처럼. 눈을 떠보니 양복을 입은 참다랑어가 내 손 등에 축축한 지느러미를 올려놓으며 그날 오후 자신이 겪은 신비한 이야기를 떠들고 있다. 샹들리에에는 빛을 내는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고 작업복을 입은 낙타가 씽크대의 배관을 수리하는 중이다. 지렁이 DJ가 트는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모두들 빨갛고 노랗고 파란 술잔을 들고 있다. 그리고 등 뒤엔 칠흑같이 어두운 현관문 하나가 알수없는 불안을 뿜어댄다. 방안의 누구도 그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지만 문의 존재를 모른다기 보다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바로 그때 문 뒤에서 "쾅, 쾅." 하는 노크 소리가 들린다. 방안의 모두는 그 노크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듯 여전히 신나는 음악에 몸을 흔들고 있지만 눈을 한번 깜빡 할 정도의 시간, 아주 찰나의 순간 손에 잡힐듯 경직된 침묵을 느낀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검은문을 쳐다본다. 나는 참다랑어와 낙타와 박쥐와 지렁이 그 밖의 모든 존재의 외면을 무시하고 문으로 향한다. 다시 한번 "쾅, 쾅." 노크 소리가 들린다. 이제 그 소리는 방안의 누구도 깜짝 놀래킬만큼 명확하고 우렁차다. 하지만 그들은 애써 소리를 무시한다. 나는 참다랑어를 쳐다본다. 그의 몸 위를 흐르는 물기가 바닷물인지 아니면 땀인지 알 수 없다. 나는 그들이 온 힘을 다해 부정하려는 불안을 못본채하며 문고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마침내, 


검은색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