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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가슴 짠한 얘기에 남자는 눈물을 훔친다 - 여배우들(2009)

WiredHusky 2010. 8. 3. 17:37

이재용은 '조선남녀상열지사: 스캔들'을 연출한 감독이다. 그 전에는 이미숙, 이정재 주연의 '정사', 이정재 주연의 '순애보'를 만들었다고 한다. 스캔들 후로는 '다세포 소녀'라는 김옥빈 주연의 
다소 난해한 영화를 연출했다. 그리고 최근작이 바로 이 영화 '여배우들'이다.  


 


그의 필모그라피를 나열하는 이유는 작품과 작품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위함이다. 이미숙은 정사와 스캔들에서 전도연은 스캔들에서 능숙한 베드씬으로 이슈가 됐었다. 그리고 김옥빈은 청순해 보이는 커다란 눈망울, 거기다 약간 육덕진 몸매로 성숙미까지 갖춘 신예 스타로 다세포소녀의 캐스팅만으로도 화제가 됐었다. 대체로 여배우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구나,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나온게 아닐까? '여배우들'에는 6명의 배우가 나온다. 각각 자신의 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로 김옥빈, 김민희, 최지우, 고현정, 이미숙, 윤여정이 바로 그들이다.  

영화 중간 전도연이 임신으로 인해 캐스팅이 불발됐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 것은 실제 있었던 일로 생각된다. 전도연이 캐스팅 됐더라면 '이재용의 여자들'이 완성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안됐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미완성이라는 말은 아니다.  



영화는 VOGUE 화보 촬영 현장을 무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화는 촬영 현장을 '촬영'하는 셈이다. 따라서 화보 촬영 현장의 Making Flim처럼 거침없이 Camera가 흔들린다. 앵글도 엉성하다. 
그 대단한 배우들의 얼굴이 더블(한 배우의 얼굴이 다른 배우의 얼굴을 가려버림)이 되는가하면 조명이 너무 어두워 표정을 읽을 수 없기조차 하다.  

하지만 이것이 이 영화의 전략이다. 여배우들을 촬영하는 것은 VOGUE 사진 작가의 카메라에 맡겨두고 영화는 무대의 뒤편, 여배우들이 가식을 벗고 평범한 여자로 돌아가는 뒷골목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 뒷골목에선 꾸며진 무대에선 절대 맡을 수 없는 진솔한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애드립인지 각본인지 알 수 없는 대사는 이 영화의 백미다. 아마 상당 부분이 애드립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배우들끼리의 수다를 그대로 화면에 옮겼을 지도 모른다. 이재용 감독은 여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자신이 만들어온 각본을 던져버렸을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 한 두 씬 정도는 자신의 각본대로 진행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현실감을 보고 당장 포기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Credit의 각본 부분에 6명의 여배우들 이름이 올라온 것이리라. 그만큼 배우들의 대사는 농밀하다. 리얼하다. 순수하다.  

특히 윤여정과 이미숙의 대사는 쟁쟁한, 젊은 여배우들을 압도한다. 그들이 풀어놓는 삶의 두께과 고통은 과연 무엇이 대배우를 만드는지 깨닫게 해줄 정도였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고현정이 꺼내고 이미숙이 끌어 올린 뒤 윤여정이 마무리하는 '이혼에 대한' 고백이다.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설움에 고현정은 북받쳐 울었고 이미숙은 오랫동안 잊어온 일을 새삼스레 깨달은 사람마냥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상처위의 상처위의 상처들이 굳은 딱쟁이를 이뤄버린 윤여정은 담담하게, 그러나 부드럽게 그들을 타일렀다.  

그것은 결코 연기가 아니었다. 여배우들은 눈물을 통해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배우의 가면을 벗고 인간대 인간 여자대 여자로서 그들은 가슴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였다. 



영화 '여배우들'은 오만과 가식 허영과 질투가 지배하는 여배우들의 화해의 장이며 한국 사회에서 여배우란 명찰을 달고 살아온 Old Lady들이 앞으로 똑같은 삶을 살아갈 Young Lady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영화는 끝나 있었다. 연기자의 삶을 본 건지 삶을 사는 연기자를 본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컴퓨터를 끄고 이불을 반으로 접어 한 쪽에 밀어 놓은 뒤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영화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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