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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조사관_불모지에 내린 씨앗 본문
미스테리의 불모지에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한국의 작가들의 심중을 살펴보자. 그들을 쓰게 하는 동기는 뭘까? 장르에 대한 애정? 문명을 떨치려는 야망? 큰 돈을 벌어보려는 속셈? 어떤 생각을 품었던 좌절할 가능성이 크다. 불모지는 괜히 불모지가 아니다. '미스테리' 장르가 아니라 '장르' 문학 자체가 설 자리가 없는 한국에선 숨이 턱이 찰 때까지 달려도 오아시스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달리는 조사관>이 두 배로 의미 깊은 이유는 이 소설이 미스테리 장르인데다 지극히 한국적이기 때문이다. 거창한 트릭도, 사건도 없이 평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당연히 기벽의 탐정도 천재적 악당도 엽기적 살인도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호불호를 나눌 수는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미스테리란 거의 이런 것들을 주무기로 삼고 있으니까, <달리는 조사관>을 읽으면 에이 싱거워, 이게 무슨 미스테리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그런 양념 투성이 잡탕보다는 이쪽이 훨씬 깔끔하고 맛있었다. <비밀의 숲>이나 <라이프>처럼 이야기를 쫄깃하게 만드는 배후의 거대한 음모가 없는 건 아쉬울 수 있지만 그건 단편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다음 책으로 송시우의 장편을 고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윤서, 이달숙, 배홍태. 인권증진위원회의 세 조사관이 때로는 각각, 때로는 또 같이 인권위에 진정된 사건의 실마리를 파헤쳐 나간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나가는 한윤서과 다혈질이지만 추진력이 있는 이달숙, 그리고 약자의 편에 선다는 자의식이 지나쳐 때로는 객관적 시비를 가리지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조사에 열정적인 배홍태. 세 사람의 케미는 잘 짜여진 캐릭터 드라마를 이룬다. 여기에 몇몇 양념들, 그러니까 조사관들의 개인사와 정부 조직간의 알력, 큰 사건을 일으킨 VIP와 조사를 막으려면 배후 세력이 추가된다면 웰메이드 드라마 각본으로 각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는 조사관>의 작가 송시우는 지극히 대중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면서도 본인의 신념을 펼치는데는 주저함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선과 악의 분명한 경계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악인에게 벌을 내리며 쾌감을 느낀다. 쾌감은 악인이 악할 수록 더 커진다. 그래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악인들은 대부분 구역질이 날 정도로 피상적이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때로 선악의 경계를 넘나든다. 단지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보호하는 건 옳은 일인가? 가해자는 관점에 따라 피해자가 될 수는 없는가?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화를 내야 할 대상을 잃고 방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세상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한 사람을 가리키며 저자가 절대악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이곳이 지옥이 아니라면, 세상엔 절대악이 존재할 수 없다(정말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절대악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기는 한다).
사람들은 <달리는 조사관>을 읽으며 한땀 한땀 생각의 고리를 엮어 나가는 한윤서에 답답함을 느낄수도 있다. 한윤서가 시원하게 악당을 쓸어버리려는 이달숙이나 배홍태, 오히려 그들을 방해하는 악당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자. 이 사실을 염두해 두고, <달리는 조사관>을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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