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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_유시민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WiredHusky 2018. 9. 9. 10:51





유시민은 이 책에서 2,500년간 기록되어온 역사를 탐구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에서 시작하여 사마천, 이븐 할둔, 랑케,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 나아가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까지 열다섯명 가량의 역사가와 그들이 서술한 역사책을 소개한다. 유시민은 "그들이 왜 역사를 썼는지, 무엇의 역사를 서술했는지, 왜 하필이면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했는지 알고싶어서 귀를 기울였다." 고 말한다.


굴곡 많은 현대사를 살아온 그에게 역사만큼 위안이 되는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역사를 읽는 이유가 우선 재미있기 때문이고, 현재를 이해하고 싶어서, 또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자신이 처했던 고난을 위로하기 위해, 또 그 고난의 이유를 알고 싶어서, 나아가 그것을 극복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역사를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쓰는 사람은 어떨까? 역사가들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광활한 백지 앞에 앉아 먼지나는 사실들을 꺼내 냄새 맡고 씹어보며 그 감정과 생각들을 기록하는 걸까?


"역사가는 존재의 유한성을 넘어서고 싶어한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가치를 유지할만한 사건과 사실을 이야기하고, 거기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한다. 역사가는 또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해 타인의 이해와 공감을 받으려한다."


남자로선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당했으면서도 사마천이 끝까지 살아남아 '사기'를 집필한 이유를 생각해보자.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건 이 뛰어난 역사가에게 궁형을 내린 멍청한 왕이 아니라 사마천 그 자신이다. 죽간과 먹, 붓을 이용해 내린 우아한 복수. 그것이 바로 사마천을 구원했던 것이다. 유시민의 말을 곰곰히 듣고 있자니 그렇다면 유시민이 역사를 쓴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의 역사를 서술했는지, 왜 하필이면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했는지 알고 싶어졌다.


역사보다 진위에 대한 시비가 첨예한 학문은 없을 것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일반 논문의 데이터를 조작하고 왜곡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람들은 역사의 왜곡을 훨씬 비윤리적으로 느끼며 거기에 훨씬 더 강하게 공감한다. 한마디로 분노의 크기가 다른 것이다. 이유가 뭘까? 역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전히 객관적인 역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사악한 당나라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을 찬양한다면 그것은 객관적인 역사인가 아니면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주관적 역사인가? 객관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진정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인가?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역사가가 존재하지 않는 역사라면 말이다.


랑케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 사실 그 자체만을 기록하려 노력했지만 그의 책에 실린 역사적 사실과 그렇지 못한 사실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걸까? 역사가는 왜 다른 사실 대신 '그' 사실을 기록했을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빠짐없이 기록한 비디오라면 그것을 객관적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역사는 단순한 사실의 총합이 아니다. 역사란 여기저기 퍼져있는 고엔트로피 상태의 사실들을 역사가의 관점과 해석으로 줄지어 세워 저엔트로피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역사가 없이 역사는 존재할 수 없다. 이 말은 인간이 존재하는한 역사는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유시민은 어쩌면, 진보 지식인에게 부여되는 결벽적인 객관성에 피로를 느꼈을지 모르겠다. 그는 여전히 똑같은 생각을 갖고 일관된 주장을 펴고 있지만 그가 패자의 입장이었을 때, 그가 약자의 입장이었을 때 사람들은 그의 말에서 더 많은 객관성을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사람들을 탓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부당함을 느꼈을 수는 있지만 그는 충분히 그런 생각에 공감했던 것 같다. 그는 이제 대중과 한 발짝 떨어져 원래 자신이 서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무리한 추측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왜 역사가들의 시선에 자신의 시선을 집중했는지 알 것 같다. 그는 역사적 진실을 획득한 현인도 아니고 그 진리를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구원자도 아니다.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된다. 수천년 동안 존재해왔던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유시민 또한 자신의 관점에 따라 역사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인간일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지지하거나,


혹은 자신의 관점에 따라 새롭게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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