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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시대, 어떻게 일 할 것인가_네, 잘 알겠습니다. 본문

4차 산업혁명시대, 어떻게 일 할 것인가_네, 잘 알겠습니다.

WiredHusky 2018. 9. 30. 11:23





도대체 이런 책들은 왜 하나같이 별로인지 모르겠다. 구한말에 잠들었다 21세기에 눈을 뜬 아저씨들에게 현대 세계를 유람시켜주는 책인 것 같다. 구체적 방법은 하나도 없이 사례와 현상만을 얄팍하게 늘어놓는데 일종의 강의 원고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자들이 기업 교육을 기획하는 사람들이라 그 포맷에 완전히 인이 박힌 것 같다. 강의에서 Deep한 토론을 벌일 수는 없으니까, 참신한 생각과 주장은 버리고 누구나 알만한 회사들의 성공 사례를 팜플렛처럼 펼쳐놓는다.


이런 책이 별로인 이유는 저자들이 독자로 규정하는 집단에서 내가 너무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책과 강의도 유용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의 기업에서 의사결정권자로 일하고 있으니 이 회사의 전략은 나름 탁월하다. 나도 나이면 들면 이런 얘기에 혹하게 될까?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주제들을 언급하지만 말 그대로 언급에 그치기에 딱히 할 말이 없다. 요약하면 세상이 급변하고 있으니 당신의 회사도 그 속도에 맞춰 '트랜스포메이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탈바꿈 시킨 이건희 회상의 신경영 선언이 인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들의 설득 방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공포와 희망, 그리고 해결책. 첫번째 단계는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여기서 삐끗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최강의 육식 공룡이라도 안전하지 않다. 위협이 같은 공룡이 아니라 우주에서 날아오는 운석이라면 내가 지구에서 가장 센 동물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있겠는가? 다음 단계는 운석 충돌 후에도 살아남은 공룡들의 적응기를 보여주며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손 쉬운 해결책은 마치 그 내용의 부실함을 숨기려는 듯 재빠르게 떠올랐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뭐지? 뭐지? 방금 나타난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사라진 진리의 흔적을 찾아 우르르 달려나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공적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해 강력한 '거버넌스'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이 책의 독자와 목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거버넌스는 특정 집단이 변화를 주도하는(주로 최고 의결기관 혹은 Boss) 전형적 탑다운 방식을 벗어나 소속 구성원들 혹은 이해당사자들간의 협치로 이뤄지는 정책 결정 방식을 뜻하지만 말만 그럴듯하지 이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버넌스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한다. 유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라고 뽑아 놓은 국회의원들이 당선만되면 본분을 망각하고 유권자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협치를 강조하지만 거버넌스도 각 부서의 엘리트들을 소수로 차출하여 구성한다는 점에서 결국 협력 기관이 아닌 권력 기관으로 변질될 우려가 높다. 생각해보라 그 똑똑한 사람들이 내린 결정에 누가 감히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거버넌스는 진리의 심판관이 될 수 밖에 없다. 거버넌스가 내린 결정은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조직에 강제로 이식된다. 이 방법이 최고의사결정권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이유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론을 효과적으로 무시할 수 있고(겉으로 보기엔 이해당사자들의 협치에 의해 결정된 사안이니까 보스는 뒤로 물러서 너희들이 결정한 사안 아니니? 라고 되물을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변화에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독자들은 역시 폭탄주 문화에 익숙하고 토론을 귀찮게 여기는 아저씨들인 걸까? 


4차 산업혁명을 찬양하면서도 아직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 운동이나 그 유명한 삼성그룹의 구조조정실에 향수를 느끼는 걸까? 이런 교육이 중견기업의 최고경영자나 팀장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좀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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