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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감각_수학은 그저 생각하는 방식의 하나일 뿐 본문

수학의 감각_수학은 그저 생각하는 방식의 하나일 뿐

WiredHusky 2018. 10. 14. 12:08





수학은 세상을 기술하는 언어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창조 설화들이 사실은 인간이 수학을 깨우쳐가는 과정의 메타포가 아닐까 생각한다. 창조 설화들은 모두 신이 무에서 '자신(나)'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최초의 분별. 무와 나를 구별하는 것. 그것은 0에서 1로 나아가는 수학의 위대한 첫걸음과 닮아 있지 않은가?


현대 수학자들은 수학이 철학으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철학자들이 수학에 보내왔던 애정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소크라테스는 혼이 살아있는 인간이 되려면 수학을 공부해야 하며 진정한 지도자를 양성하려면 수학 공부를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칸트는 수학이야말로 진정한 이성의 학문이라고 했다. 근대 수학의 토대를 쌓은건 누구인가? 어느 대단한 수학자가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자(philosopher), 끊임없이 회의하고 회의했던 르네 데카르트 였다. Cogito Ergo Sum!


과거에 수학은 철학과 명확히 구분되는 학문이 아니었다. 당시 철학자들은 생각하는 일을 모두 철학의 범주로 넣었던 것 같다. 나는 이것이 직업이 세분화 되지 않았던 전근대의 한계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철저한 논리로 세상의 이치를 규명하고자 했던 철학자들에게 연역의 정수인 수학이 생소했을까? 그들은 수학적 사고가 아니라 그냥 사고를 했다. 사고 자체가 수학적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에 이르러 수많은 일들이 각자 전문성의 기치를 걸고 세분화된 탓에 우리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수학자, 아니 그냥 생각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을 영영 잃어버린 것 같다. 제가 문과라서 수학이 참 약합니다. 철학과 출신이 어떻게 수학을 이해하겠어요? 놀라운 일이다. 우리 스스로 두 개의 영역을 구분한 순간 우리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 영원히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이제는 돌아갈 길이 너무 요원해 보인다. 수학은 끔찍한 공식과 추상화된 기호가 난무하는 괴물이 되버렸다. 그런가하면 철학은 가장 단순한 진실을 가능한 복잡한 언어로 기술하는 뒤틀린 자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수학의 감각>은 수학이 그저 생각하는 방식 중 하나였던 시절로 우리를 돌아가게 한다. <수학의 감각>은 수학이 내포한 인문학적 감수성을 호도하지도, 수학이 가진 전문성을 뽐내지도 않는다. 이 책엔 제곱과 제곱근, 우리를 괴롭혔던 식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사고를 돕는 도구로써 기능할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영에서 하나를 분별하고 하나에 하나를 더해 둘을 연역하듯, 사고는 충분히 단순화된 형식으로 치환되어 문제의 핵심에 도달한다. 수학적 사고란 진정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동안 우리가 받아왔던 수학 교육이 얼마나 헛다리를 짚었는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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