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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_나와 세계

WiredHusky 2018. 10. 7. 11:07





제러드 다이아몬드에게 관심이 생긴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난 다음이었다.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설적 베스트셀러라면 일단 가재미 눈을 뜨고 보는 나이기에 <총, 균, 쇠>의 저자는 그닥 관심이 가지 않았다.


<사피엔스>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역사와 생물학, 역사와 과학이 결합된 새로운 서술법. 국가나 민족을 뛰어넘어 인류 그 자체를 냉정하게 해부하는 과감한 시도. 인간이 언제나 역사의 주체임을 무의식 중에 받아들이던 나에게 철저한 객체로 존재하는 인간은 인식의 한계를 확장시키는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라리는 그 책에서 자신이 <총, 균, 쇠>에 빚을 졌다고 밝혔다. 자연스럽게 내 다음 행선지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총, 균, 쇠>는 여름 휴가철에 들고갈 수 있는 만만한 책이 아니다.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읽을 때도 오독을 방지하기 위해 연달아 두 번씩 정독했다.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그러니 마음이 가도 선뜻 손을 내밀 수 없는 모호한 관계가 나와 제러드 다이아몬드 사이에 유지되어왔다. 그러던 중 바로 이 책을 만난 것이다.


<나와 세계>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완벽한 입문서다. 원래 이 책은 저자가 로마 루이스 대학의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일곱번의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 글은 구어체로 기술되어 쉽게 쉽게 읽히고 내용은 교양 수업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다. 이 세계가 직면한 문제점과 그 문제를 해석하는 틀을 명확히 제공하여 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은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게다가 이 책은 아주 얇고 싸기까지 하다.


저자의 첫번째 질문은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 이다. 그는 그 이유를 지리적, 제도적 요인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서구 사람들이 익숙하게 제기해왔던 민족적 특성은 인간이 제도와 환경의 산물임을 밝힘으로써 일축된다.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는 현상을 구조적으로 해석한 뒤 책은 중국이라는 라이징 스타를 실례로 들어 이 해석의 틀을 실전배치한다. 그러나 한 국가의 흥망이 오로지 지리와 제도의 복합으로만 결정될까?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과거에 좋은 제도를 이미 확립한 국가라면 그 발전은 영속할 수 있을까? 저자는 개인이나 국가가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후 그가 제시하는 역사적 사례는 시시각각 위기에 직면하는 우리에게 그것을 돌파해 나갈 일말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결국 역사란 인간과 환경이 주고 받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며, 이 상호작용의 형태와 내용에 따라 어떤 국가는 성장하고 어떤 국가는 붕괴하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강의에 이르러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점들을 몇가지로 나눠 제시하지만 이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철저히 외면해왔던 것들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마지막에 이르러 출발선을 제시한다. 그는 강의실 문을 열며 이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위기를 돌파해 나갈 시간임을 알린다. 그는 큰 소리로 독려한 뒤 주춤대는 우리를 놔둔 채 운동화 끈을 여미고 강의실 밖으로 달려나간다. 끝이 곧 시작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세계는, 비로소 나와 세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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