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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_퀴어는 그저 거들 뿐 본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_퀴어는 그저 거들 뿐

WiredHusky 2018. 10. 21. 10:55





물신의 세계에서 맺는 피상적 인간관계, 반지하 월셋방의 찌질한 인생, 주류 사회에 끼지 못하는 외로움, 독특한 생각과 취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비웃고 뒤트는 시니컬한 유머와 독설. 한국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이 모든 속성들을 골고루 갖고 있는 박상영표 소설에서 다른 뭔가를 하나 찾자면 그건 아마 '퀴어'일 것이다. 동성애. 소외받은 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소외된 인간들.


박상영 소설 속의 동성애자들은, 그러나 사회의 노골적 편견과 몰이해에 고통받는 존재는 아니다. 작중 화자의 말에 따르면 박상영은 결코 동성애를 대상화하여 저급하게 소비하지 않는다. 핍박받는 자들의 절규와 고통으로 그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면 그건 핍박받는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더 나쁜 일이다. 기부금을 받기 위해 TV로 송출되는 자선단체들의 광고를 보라. 화면 안에는 끔찍하게 병들고 다친 수 많은 '불쌍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더 많은 기부금을 끌어내기 위해 가장 처절한 상처를 까뒤집고 전시한다. 광고 속에서 그들은 일종의 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는 불쌍하기 때문에 이해해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연의 섭리를 어기게 된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가장 완벽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그 누구도 그들을 이해하려하지 않는 것이다. 두 사람이 중국집을 갔다고 하자. 한 사람은 간짜장을 다른 한 사람은 짬뽕을 시켰다. 이 경우 두 사람은 서로의 선택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할까? 상대가 짬뽕 혹은 짜짱면을 시킨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여 그 선택의 정당성을 찾아낼까? 무슨 소리. 두 사람은 서로 무엇을 시켰는지도 모른채 그저 자신의 메뉴를 맛있게 먹고 가게를 떠날 것이다. '서울에 사는 27세 남자'라는 말과 '서울에 사는 27세 게이'라는 말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세상. 진짜 괜찮은 세상은 우리가 동성애를 '받아들일'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박상영의 소설들을 다시 읽어 본다. 그는 그가 창조한 작중 인물의 말처럼 동성애를 대상화하여 천박하게 소비하진 않는가? 게이들에게 침을 뱉는 사람들, 퀴어 축제에 난입해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지 걱정된다" 고 소리지르는 '똑똑한' 엄마들,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의 어처구니 없는 몰이해, 그리고 이모든 사회적 편견과 폭력에 시달려 자살하는 게이들. 박상영 소설 속의 게이들은 그 누구도 이러한 폭력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같이 침울하고 허무한 삶을 산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과거의 실수를 무한히 반복하며 스스로를 늪에 빠뜨린다. 이유가 뭘까? 그리고 바로 이 순간, 바로 이 의문을 떠올린 순간 나는 나조차도 엄청난 편견을 가지고 이 소설을 읽었음을 깨닫는다.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 피상적 관계 속에 나와 타인을 이어주던 고리들은 점점 얄팍해지고, 반대로 나를 에워싼 껍데기는 갈수록 단단해지는 사람들. 그래서 외로워지고, 외롭기 때문에 더 외로워지는 인간들. 외로움이 만든 인생의 구멍을 탕진적 소비와 SNS에서 만든 가짜 자아로 채우려는 사람들. 그들은 게이여서 그런 삶을 사는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이 가진 보편적 삶, 보편적 고민, 보편적 고통인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탕진과 방황을 볼때마다 나는 무의식 중에 사회적 편견과 멸시가 그들을 이런 상태로 몰아 넣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니,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은 게이여서 그런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우리와 똑같이,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기에 그런 삶을 사는 것이다.


당신은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답은 멋지고 쿨할 수 있다. 하지만 무의식은? 포용과 친절 속에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끔찍한 편견이 내포되어 있다면? 어쩌면 이 소설은 일종의 테스트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게이에 대해, 정말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판단하는 테스트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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