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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작전_호모 데우스 이후의 하라리를 읽고 싶다 본문

대담한 작전_호모 데우스 이후의 하라리를 읽고 싶다

WiredHusky 2018. 7. 29. 09:51






이 책은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벌어진 전쟁들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특수 작전들에 대해 얘기한다. 하라리에 따르면 특수 작전은 근대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UDT, 네이비씰, 파라레스큐, S.A.S, 그린베레 등 화려하게 등장한 특작부대의 전설적 이야기에 매료된 것일 뿐, 특수 작전은 시대를 막론하고 실행된 중요한 군사 작전이었다.


물론 그 규모에선 차이가 있다. 오늘날의 특작부대는 최첨단 헬기를 타고 사막의 폭풍을 뚫고 들어가 요새의 방어 병력을 무력화 시킨 뒤 요인을 사살하거나 댐, 발전소, 다리, 산업 시설 등 중요한 인프라를 소수의 인원으로 파괴한다. 반면 1,000년의 특작 부대는 야음을 틈타 몰래 성벽을 넘거나 적국의 '방앗간'에 침투해 맷돌과 물레방아를 파괴했다. 이 규모의 차이 때문에 특수 작전이라는 말에 헛웃음이 나올 수도 있지만 작전의 성공이 초래하는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례로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강력한 왕이었던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는 전력상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는 프랑스를 거의 망국 직전까지 몰고갔지만 적 특작부대의 습격으로 방앗간이 파괴돼 전군을 퇴각시켜야만 했다. 곡식을 가공할 수 없었던 황제의 군대는 설사병을 비롯 온갖 질병에 시달려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전투에서 죽은 사람보다 먹을 것 때문에 사망한 사람이 더 많았다. 황제의 군대가 완전히 퇴각했을 때 처음 국경을 넘었던 6만명은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만약 황제에게 방앗간이 두개만 남아 있었어도 유럽의 정치 지도는 오늘날과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이처럼 특수 작전은 정규전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었다. 중세의 기사들이 기사도 운운하며 정의로운 전쟁을 치렀다지만(전쟁이 정의로울 수도 있나?) 그들이 저지른 수 많은 암살, 납치, 감금 사건들을 보면 그 고귀한 기사들도 야비한(?) 특수 작전이 가져다 주는 달콤한 결과의 유혹에 무적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전쟁은 대단히 많은 자원이 들어가는 일이고 대단히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전쟁에 져서 망한 국가 못지않게 전쟁에 이기고도 망한 국가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쟁은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율 사업이었던 것이다.


특수 작전의 실행 계획이 대단히 창의적이었나 하면 그렇지도 않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수만이 할 수 있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고작 인맥을 이용해 내부의 배신자를 포섭하거나 가장 허술한 성벽을 타고 오르거나 밤새 걸어 방앗간을 파괴한 뒤 기마병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산길로 행군을 했을 뿐이다. 그야말로 대담함 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계획. 이는 굳건해 보이는 시스템도 의외로 수많은 취약점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는 늘 창조적 파괴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오늘날의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사실이다.


<대담한 작전>은 한국에 소개된 유발 하라리의 네 번째 책이지만 쓰여진 시기는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데우스>보다 이전이다. 아직 학계에서 뚜렷한 존재감은 없던 시절이었는지 지난 두권의 책에서 보여줬던 유발 하라리의 대담한 해석과 도발적인 문제 제기는 전무하다. 마치 보수적인 교수에게 제출하는 논문처럼 문장은 얌전하고, 겸손하고, 모범적이다. 지겨울 정도로 계속되는 사실의 나열은 사료 수집에 대한 저자의 노력을 인정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지난 두 책의 전율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이 책 <대담한 작전>에서는 결코 대담한 주장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 마음 속엔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나는 <호모 데우스> 이후의 하라리가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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