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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PXsociety
나는 논쟁을 싫어한다. 생각과는 다르게 논쟁은 한쪽이 엉터리 논리를 펼쳐서가 아니라 양쪽이 다 맞는 말을 할 때 성립한다. 연애 상담이라면 그래, 둘 다 옳지 옳아, 하며 하나씩 양보해 타협하라는 중재안을 내놓을 수 있지만 회사 일에서는 이런 식으로 넘길 수 없는 순간이 많다. 중재안으로 팀은 평화를 찾을 수 있겠지만 고객은 그렇지 않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반푼이 서비스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뭔가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좋게 좋게 가자. 이건 좋은 게 아니라 이기적이고, 무능한 거다. 비용과 수고가 드는 일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라야 한다. 꼭 성공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얻는 게 있어야..
은 커트 보네거트 주니어가 아직 밥을 벌기 위해 쩔쩔매던 시절에 출간한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불의의 사고로 숨진 누나의 자식들까지 입양하여 대가족을 이룬 그에게 이름 없는 작가의 삶이란 결코 녹록지 않은 적수였을 것이다. 어디서 글을 쓸 용기가 났는지는 확실치 않다. 확실한 건 이 위대한 용기가 출발한 지 거의 20여 년이 지나서야 그가 성공다운 성공을 맛봤다는 것이다. 짹짹? 이 책에는 이후 커트 보네거트가 끈질기게 추구해 온 테마의 씨앗이 골고루 심겨 있다. 트랄파마도어 행성, 미래를 안다는 것의 의미, 자유의지 같은 것들.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킬고어 트라우트는 아직이다. 주니어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과 의 믹스라는 말에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에는 ..
대한민국은 빈곤층부터 상위 중산층까지 모두 계층 하락의 불안에 시달리는 특이한 나라다. 언제부터 그랬냐 묻는다면 정확한 연도는 모르지만 적어도 80년대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1989년의 대한민국은 국민의 75%가 '나는 중산층이다'라고 대답하는 나라였다. 실제 이 중 일부는 소득을 기준으로 볼 때 중산층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이는 당시 한국인들의 계층 상승에 대한 자신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불과 20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2010년대에 이르러 이 수치는 20%대로 떨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소득상 중산층에 속해있었다는 점이다. 2010년대의 한국인은 80년대에 비해 확실히 기가 죽어 있었다. 80년대에는 중..
이 책의 짧은 서평들을 보다 보면 내가 그들과 같은 책을 읽은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는 거창한 제목을 달았지만, 이는 저자의 논지와 너무 거리가 멀다. 이 책은 최초의 석유 시추 시대부터 최근에 이르는 유가의 변동을 지루할 정도로 세세히 늘어놓는다. 어떤 의견을 뚜렷이 제시하기보다는 최대한 정확한 사실을 수집하여 박물관처럼 전시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 같다. 출판사도 초월 번역을 의식했는지 원제 (유가 변동성)을 더 크게 써놨다. 석유도 시장의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변한다. 그런데 석유에는 좀 특별한 점이 있다. 우선 수요의 측면에서 보면, 유가가 수요의 영향을 받는 건 맞지만, 수요가 반드시 유가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이유는 석유가 '필수재'이기 때문..
홋카이도 출신의 신도 요리코는 야쿠자 수십 명을 한꺼번에 박살 내는 괴력의 여자다. 폭력을 갈구하는 욕망이 핏 속에 흐르고 있다. 화장이나 쇼핑, 자신을 가꾸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주먹이 뼈에 닿아 부러지는 느낌, 오로지 그것만이 신도 요리코를 살아있게 한다. 그녀는 괴물이다. 독보적인 캐릭터와는 달리 이야기는 좀 갸우뚱하다. 야쿠자와 시비가 붙어 본거지에 잡혀온 요리코는 그곳에서도 한 바탕 난리를 치며 진실로 살아있는 야생의 짐승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그녀를 제압한 건 40킬로그램이 넘는 도베르만이었다. 개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요리코가 개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도 말을 듣지 않던 요리코는 야쿠자가 기르는, 처음 본 개를 죽인다고 협박하자 마침내 마음을 꺾는다. 맡겨진..
전 세계에 극우가 만발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는 파시즘 정치가 동작하는 방식, 그들이 어떻게 멀쩡한 시민들을 극단으로 이끄는지를 분석한다. 파시즘 정치의 시작은 구별이다. 그들과 우리를 구별하기 위해선 우리가 특별해야 하므로 한 민족의 역사가 완전한 허구에 기반해 신화화된다. 보통 순혈에 대한 망상은 히틀러가 거의 모든 악명을 뒤집어쓴 덕분에 내로남불에 빠지기 쉬운데, 사실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심지어 왕까지 외국인과 결혼한 사례가 수두룩한 역사를 보고도 우리 배달인이 단일민족이라는 환상을 갖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국가는 조작된 신화를 교육, 문화에 대대적으로 침투시켜 선전을 시작한다. 이에 딴지를 거는 사람은 민족혼을 부정하는 배신자. 진실은 매도, 비판은 폭력의 대상이다..
우아한 제목에 홀려 집어든 는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피 비린내가 진동하는 폭력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 비하면 은 발레에 가깝다. 피를 쏟는 방식이 상어와 독수리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다 읽고 나서야 원제인 를 발견했는데, 번역계에 노벨상이 있다면 이 소설의 옮긴이 박영인 씨에게 수여되리라. 는 LGBTQ에 인종 문제까지 섞는다. 주인공 아이크와 버디는 각각 흑인과 백인이다. 두 사람에게는 모두 아들이 있다. 이 아들 둘이 결혼, 아이까지 입양해 가정을 꾸린다. 아들들은 기자 생활을 하며 LGBTQ의 수호자로 살아가다 우연히 위기에 빠진 트랜스젠더 여성을 돕게 되는데, 그녀에게 얻은 정보로 폭로 기사를 준비하던 중 총에 맞아 뇌수와 장기를 도로 위에 흩뿌리고 죽는다. 이제 아버지들의 차례다. 당연히 ..
은 '차이메리카'에서 '신냉전'으로 급랭한 미중 관계 파국의 원인을 분석한다. 현재 주류 평론은 그 원인을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찾는 것 같다. 자유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독재 사이의 충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중국이 독재국가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물론 시황제가 3연임을 강행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주석만 바꿔가며 당이 독재를 감행한 게 현대 중국의 역사 아니던가!? 게다가 경직성으로만 따지면 1989년 천안문의 인민을 '인민해방군'이 탱크로 깔아 죽인 덩샤오핑의 중국이 훨씬 권위주의적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과 중국은 공존을 넘어 단일경제체로 향할 만큼 달콤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훙호평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본이 문제라고 말한다. 1990년대 미국의 외교 엘리트들은 인권과 환경을 지키지 않는 중..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라 불리는 조지 프리드먼의 는 예측의 정확도를 떠나 그냥 재미있다. 사실 21세기에 100년 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를 예측한다는 건 무모함을 넘어 어리석은 일이다.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가는 특정 기술의 발전 양상을 따라잡기도 어려운 세상. 눈앞에 보인 것을 제대로 붙들고 인식하기도 전에 구식이 돼버리는 시대에 무슨 수로 미래를 예측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 특히 이처럼 불멸의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웃음거리가 될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빈말 없이 직설적으로,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조지 프리드먼의 추구하는 예측 방법의 핵심은 '현실적인 태도를 유지하되, 불가능한 것을 예상'하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건 후자, 즉 '불가능한 것을 예상' 하는 ..
이 책은 온 세상이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했으며, 근본적으로 같다는 비교적 신비주의에 빠져든 사람들에게 인지편향을 더해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각 장의 주제를 간단히 살펴보면 복잡한 연결망, 조화, 임계성, 티핑 포인트, 집단행동, 협력이며 이 주제를 설명하는 소재로 버섯, 메트로놈, 친구의 친구, 모래더미와 팬데믹, 기후 위기, 청어, 세균총 등이 등장한다. 이 난잡한 집합에 한 가지 혼란을 더하기 위해 나는 저자의 약력을 소개하고 싶다. 저자 디르크 브로크만은 원래 이론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한 독일인이다. 그는 일찌감치 전통적인 물리학에서 멀어졌는데 그의 학사 논문 주제가 '포유동물의 호흡과 호흡 조절 방식'이었다는 것만 봐도 그 거리가 얼마나 멀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