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조명기구
- 조명디자인
- 진중권
- 신자유주의
- 아트 토이
- 주방용품
- 가구
- 미술·디자인
- 조명
- 킥스타터
- 애플
- 램프
- Product Design
- 조명 디자인
- 피규어 디자이너
- 피규어
- 일러스트레이션
- 프로덕트디자인리서치
- 북유럽 인테리어
- 가구 디자인
- 해외 가구
- 인스톨레이션
- 프로덕디자인
- 일러스트레이터
- 인테리어 사진
- 글쓰기
- 인테리어 조명
- 인테리어 소품
- 재미있는 광고
- 가구디자인
- Today
- Total
목록책 (719)
deadPXsociety
나는 새로운 언어를 찾고 싶을 때 시집을 읽는다. 평소에는 함께할 수 없었던 단어들이 먼 곳에서 찾아와 한 문장을 이룬다. 이게 저 옆에 설 수도 있구나, 저게 이 앞에 올 수도 있구나. 그 낯섦에 읽는 눈이 매끄럽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요철이 마음에 걸린다. 두 개가 만나 온전한 그림을 이루는 퍼즐처럼. 이은규 시인의 에는 구름과 바람과 꽃이 흐드러진다. 그러나 이것들은 평범한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이 시에서 구름과 바람과 꽃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친구에 가깝다. 구름이나 바람이나 꽃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것들은 그냥 우리의 옆에 서 있는 자연물이다. 긴 기다림일수록 빨리 풀리는 바람의 태엽 입김을 동력 삼아 한 꽃이 허공을 새어나온다 찢겨진 것들의 화음으로 소란한 봄 꽃은 피는 것이 아니다. ..
이중톈 교수의 중국사 시리즈가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어 대단히 아쉽다. 이중톈 교수로 말할 것 같으면 중국의 르네상스인으로 모르는 분야가 없는 박학다식의 천재다. 이름이 알려진 건 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를 한 게 계기였다. 이 강의는 동명의 책으로도 2권이 출간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나는 두 권을 다 읽었을 뿐만 아니라 내친김에 까지 달렸다. 여기에 를 더하면 얼추 대표작을 다 나열한 것 같다. 이 중 무엇이 가장 재미있었냐는 질문은 크게 의미가 없지만 굳이 따진다면 미학 강의, 삼국지 1, 삼국지 2, 초한지 순이 아닐까 한다. 이 외에도 중국 현대의 시류를 다룬 책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별로였던 것 같다. 그렇게 자연히 멀어져 오랜 시간 각자의 삶을 살다 이렇게 다시..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가짜 노동과 진짜 노동이 무엇인지 구별할 기회를 줬다. 도시가 봉쇄되고 모임이 금지된 그 시기에도 반드시 모여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청소부, 간호사, 소방관, 경찰관 기타 등등. 정말 놀라운 건 저 중에 내가 하는 일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계사, 변호사, 전문 경영인, 마케터, 준법 감시 책임자 등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숨겨진 역설을 눈치챈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특히 필수 인력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연봉 차이를 떠올리면 그 역설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내 생각에 인간은 주 3일 근무가 적당하다. 5일씩이나 나와서 할 일은 거의 없다. 스스로 판단하여 진행할 일은 불필요한 보고 체계 속에서 한없이 늘어진다. 회의는 비 온 뒤 활짝 핀 버섯처럼 우..
에서 나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좋아했다. 야미쿠로가 득시글한 미지의 동굴을 탐험하고, 이상한 박사님과 어시스턴트가 등장하고, 탐정이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그야말로 모험활극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유일한 단점은 중간중간에 '세계의 끝'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세계의 끝'에는 마라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단물 빠진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참 모험을 즐기다 이 '끝'을 맞닥뜨리면 장로드래곤 앞에서 한타가 벌어진 순간 PC 전원이 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은 정확히 '세계의 끝'의 확장판이다. 1, 2, 3부로 나뉜 이 소설에서 나는 은근히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기대했다. 그래, 이 지루한 1부를 클리어하고 나면 반드시 원더랜드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기대는 완전히 박살 났다..
나는 세계가 실재하며 오직 하나뿐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세계란 우리가 의식한 결과이므로 세계는 이 세상의 사람 수만큼 존재한다는 포스트모던한 생각이, 어떻게 보면 폭력적이라 느껴질 수 있는 객관적이고 유일한 실재로부터 나를 구원하고, 동시에 아주 다양하고 흥미로운 세계로 이끈다는 점에서 상당한 매력을 느끼지만, 결국 그들이 얘기하는 의식의 결과는 뇌 속에서 이뤄지는 일이라 실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해석하는 관점이 여럿이라고 해서 작품 자체가 여럿일 수는 없는 법이다. 확고한 신념은 영화 를 통해 균열이 갔다. 는 이 세계가 정교한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며 우리가 느끼는 이 모든 경험은 그저 뇌로 흘러들어 가는 전기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데카르트 식..
수컷들의 영원한 친구 리처드 도킨스는 에서 이렇게 썼다.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며, 진화의 근본적인 차이는 난자와 정자에서 비롯된다." 성과 성역할에 대한 신화는 뿌리가 깊다. 여성은 조신하고 신중하며 모성으로 알을 품는다. 알을 품으려면 모성이 있어야 하는데 모성은 말 그대로 엄마에게만 존재하므로 출산과 육아는 암컷의 몫이다. 그것은 자연이 정해놓은 섭리다. 암컷은 조신하고 신중하기 때문에 짝짓기 때도 어두운 관객석에 앉아 신나게 춤을 추는 무대 위 수컷들을 수줍게 바라본다. 수컷은 포식자의 눈에 잘 띄는 화려한 깃털을 휘날리며 가장 마음에 드는 암컷 앞에 선다. 암컷은 못 이기는 척 수컷의 손을 잡고 으슥한 풀숲으로 이동한다. 선택은 수컷의 몫이므로 진화의 바퀴를 굴리는 것도 수컷이다. 암컷은 그 ..
가히 의 IT 버전이라 부를 만하다. 는 로 유명한 에릭 시걸의 소설로 하버드 의대생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 바니 리빙스턴과 로라 카스텔로가 그 주인공이다. 둘은 서로를 그냥 친한 친구로 생각했으나 각자의 삶을 수십 년 살고 나니 역시 나에겐 너밖에 없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잘 산다는 이야기다. 둘 사이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매력적인 흑인 친구 한 명이 있어 중요한 구심점이 돼준다. 이 흑인 친구는 똑같이 의사를 꿈꿨으나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을 당해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결국 외과 의사를 포기하고 변호사가 된다!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되니 읽기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바니 리빙스턴을 샘으로 로라 카스텔로를 세이디로 흑인 친구를..
은 기억에 대한 소설이다. 이제는 지나간 옛일을 오늘의 내가 서술한다. 목소리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다. 가을 햇볕이 아침나절 스며든 벽돌 담장에 손을 댔을 때 전해지는 온기처럼. 소설은 눈으로 좇을 수밖에 없지만 스며드는 감정은 이와 다르지 않다. 어떤 양자는 벽을 그냥 통과하고 어떤 양자는 그렇지 않다. 광자는 빛의 최소 단위이고 광자는 양자다. 우리는 어떤 광자가 벽을 통과하고 어떤 광자가 그러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은 단지 확률로 기술될 뿐이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시간에도 비슷한 면이 있다. 시간은 대부분 우리의 인생을 투과해 지나간다.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이다. 움켜쥘 수도, 멈춰 세울 수도 없다. 그런데 어떤 시간은 우리 삶을 강타한 뒤 튕겨져 나온다. 그 충격으로 삶..
가족이 혈연을 기반으로 한 행복공동체가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하부 조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에는 아빠와 엄마와 아들과 딸과 크게는 사위와 며느리가 존재한다. 구성원들을 부르는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호칭은 각각의 역할을 규정한다. 예컨대 아빠는 돈을 벌어오고 엄마는 살림을 하며 아들과 딸은 학업에 전념하여 입신양명하고 사회적 위치를 갖추고 난 뒤엔 부모를 공양한다. 자녀가 결혼하여 사위나 며느리가 생기면 조직은 분할하거나 확장한다. 호칭은 성별을 따르고, 호칭이 역할을 규정하므로 결국 가족 내에서의 직책은 '성'이 결정한다. 저자 김지혜 교수는 이것이 견고한 '각본' 같다고 말하는데, 실상은 조직도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가족각본은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너무나 당..
내가 이과를 선택한 이유는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지난 에서도 한 적 있다. 그런 감수성으로 이공계의 메인스트림을 맞닥뜨렸을 때? 솔직히 나쁘진 않았다. 아마도 내가 이 분야들을 이야기의 관점으로 접근했기 때문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는 확실히 특정 분야 그 자체보다는 그것에 대한 '역사'를 더 좋아했다. 철학보다는 철학사, 과학보다는 과학사, 수학이 아닌 수학사, 기타 등등. 양자역학이 어쩌고 저쩌고, 데카르트가 어쩌고 저쩌고, 파인만이니, 파동함수니, 쿼크, 힉스, 페르미, 라마누잔, 가우스 아무튼 그들의 연구는 단 한 글자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만 줄줄이 읊고 다니던 시절.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창피하지는 않다. 링 위에서 뛸 능력이 없다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