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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책 (719)
deadPXsociety
이 책은 의 신판이다. 페이지는 6쪽, 무게는 9그램이 줄었다. 풀컬러에 빳빳한 종이다. 글보다 그림이 많아 숨 쉬듯 읽을 수 있다. 나는 구판과 신판을 모두 소유했고, 당연히 둘 다 읽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렇게 다를 줄은. '위스키 성지 여행'을 읽었을 때는 이제 막 싱글 몰트에 입문했던 때라 좀 더 심취했달까?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며 위스키 진열장을 뛰어다니던 초심자의 열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쪽수도 훨씬 많았다고 기억했다. 신판은 구판의 내용을 발췌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유는 아마도 내가 위스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탓일 테다. 그때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술들이 줄줄이 나왔겠지만 지금은 이 중 모르는 브랜드는 하나도 없고, 심지어 마셔보기까지 한 게 꽤 되니까, ..
필립 로스의 는 대담한 가정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홀로코스트가 미국에서 벌어진다면?' 일본의 생체실험과 더불어 20세기 가장 끔찍한 사건으로 꼽을만한 홀로코스트. 역사는 그것이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닌 독일에서, 나쁜 독일인들에 의해 벌어졌음을 실증한다. 놀라우리만치 사악한 히틀러와 소름 끼칠 정도로 정교한 나치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누가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한나 아렌트에 분노했다. 1960년 이스라엘의 첩보 기관 모사드가 아르헨티나로 도망쳐 평화로운 삶을 살던 나치 친위대 장교, '파이널 솔루션'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납치하여 이스라엘로 압송한다. 이스라엘은 그를 기소되어 1961년 공개 재판이 열렸는데 이를 참관한 한나 아렌트가 당시의 경험을 엮어 낸 책이 바..
마키아벨리언의 책이다. 시원하고 호쾌하다.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보다는 인간 세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미지가 세상을 지배하는데 왜 이미지와 싸워야 하는가? 따라야 한다. 이용해야 한다. 성공을 하려면 이데아에 모신 절대윤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칠 게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게 '옳다'는 게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것이다. 심장에 찔린 듯 날카로운 문장을 하나 소개한다. 사람들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p. 40) 환경운동가나 각종 공익 캠페인을 벌이는 사람들은 이 문장을 손바닥에 적어놓고 틈날 때마다 읽어야 한다. 기후 위기가 심각하니 정부가 차량 5부제를 시행한다고 하자. 아마 이 정부는 다음 선거에서 대패할 것이다. 사..
의 책날개 사진을 통해 처음으로 제임스 설터의 얼굴을 봤다. 잘 생긴 미국인이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방탕하고, 허무한 남자 주인공들의 얼굴과 은근히 겹쳐지면서, 또 묘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제임스 설터는 그 남자들보다는 좀 더 남성적이었다. 티모니 살라메가 아니라 브래드 피트에 가까웠다. 1925년 뉴욕에서 태어난 제임스 설터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비행 중대장까지 지냈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이때의 경험을 살려 데뷔 장편 을 내놓는다. 평은 시원찮았다. 나는 좋았다. 이후의 소설들은 완전히 달랐다. 제임스 설터를 제임스 설터로 만든 건 이 아니었다. 은 에 더 가까운 소설이다. 원래 이 소설은 영화 시나리오로 집필됐다. 영화화되지 못하자 소설로..
1960년대 초 파인만은 칼텍의 1~2학년 학부생들에게 물리학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른바 '물리학의 정석'을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강좌의 수강생은 180명이었고 일주일에 두 번 진행했다. 대형 강의실에 모여 수업을 한 뒤 15~20명의 소그룹을 이뤄 조교의 지도하에 토론하는 시간도 있었다. 실습은 매주 한 번이었다. 강의의 목적은 당연히 신입생들에게 물리학의 재미를 알려줌으로써 그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지 않나. 정말 사랑해서, 열심히 배우기 위해 대학에 왔는데 내용은 너무 어렵고, 교수는 우리가 이미 다 아는 것처럼 강의를 하고, 실생활과는 아무런 연결도 없는 순수한 이론 덩어리들을 주입받으면서 느끼는 소외감. 파인만은 이..
올해는 좋은 소설을 많이 만난다. 그중에서도 이 책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의 진리가 어디에서 솟아나는지 알려주는 따뜻한 소설이다. 가족이란 정말 지긋지긋한 존재다. 우리가 살면서 맺는 수많은 인간관계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임의적 관계다. 하지만 가족은 숙명이다. 아무리 자르고 갈고닦아도 핏줄은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핏줄은 남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내가 아무리 못해도 끊어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전직 빨치산이었던 내 아버지 고상욱 씨는 이십 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마친 뒤 자본주의의 중심 서울로 향하지 않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 심지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고향에 터를 잡았다(p.8). 대한민국에서 빨간 물이 한 번 든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었다. 문제는 이 낙인이 ..
광자의 이중슬릿 실험이 밝혀낸 양자의 이중성은 양자역학을 난해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이 실험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인 양자가 관측 행위의 여부에 따라 입자 혹은 파동으로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이 결과는 아무리 읽어도 읽어도 놀라워서 도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라는 의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실험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파인먼의 지도 교수이기도 했던 존 아치몬드 휠러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합류하기 전 닐스 보어와 함께 핵분열을 연구했고, 1950년대에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1970년대 말에 휠러는 아주 창의적인 사고실험을 고안했다. "이 실험은 관측자의 행위가 아주 미묘한 과정을 거쳐 머나먼 과거까지 도..
평범한 아저씨 주제에 과학자의 이름을 들으면 마음이 설렌다.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하고, 최선을 다해도 고작 쓰여 있는 얘기를 되풀이하는 수준이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과학 이야기를 한다. 과학이 아니라 과학 이야기. 듣고 말하는 그 순간만큼은 나도 그들처럼 멋진 과학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리처드 파인만이다. 놔두고 돌아갈 수 없는 이름이다. 진짜 읽고 싶은 책은 따로 있었는데 재고가 없어 '파인만'이라는 이름이 제목에 적힌 책 전부를 샀다. 그래봐야 두 권 밖에 안 되지만. 리처드 파인만이 이 세상에 끼친 영향에 비해 서점에는 그의 이름이 지나치게 부족한 것 같다. 그는 무려 '대학원생' 시절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 책을 읽고 영화 를 보면 두 컷 정도에서 파인만으로 유추할 수 있..
하나라를 정벌한 건 동이족이었다. 동쪽의 활을 쏘는 오랑캐라는 뜻의 동이. 중국의 역사는 삼황오제라는 신화에서 시작하여 요, 순, 우, 탕이라는 전설의 시대로 접어드는데, '우'가 세운 나라가 '하', '탕'이 세운 나라가 '상'이다. 탕은 동이족이었고, 동이는 주로 수로를 이용한 무역으로 먹고살았다. 동이는 중국 땅에 최초의 왕조를 세운 사람들이자 상인으로 기록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요, 순은 그 존재가 의심스러운 인물이고 우는 긴가민가하지만 탕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우는 요순시대에 대홍수를 관리한 곤의 아들이다. 이른바 '치수'라 부르는 그 사업에서 곤이 크게 실패하자 아들 우가 이어받아 대업을 완성한다. 순은 요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자신에게 제위를 양보한 것처럼 당시에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
위진을 대하는 이중톈 선생의 태도에는 다소 모호한 점이 있다. 중화 문명의 최암흑기라서 그런 건지, 이 시대엔 그다지 논할 게 없어서인지, 그동안 선생이 새로운 시각으로 시간을 꿰뚫어 허를 찌르는 해석을 내놓았던 것과는 달리, 오직 인물에 집중하여 최대한 그 시대로부터 고개를 돌리려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왜 그럴까? 위진 시대란 후한이 멸망하여 위, 촉, 오의 짧은 삼국시대가 끝난 뒤 조 씨의 위나라서 들어서고, 이후 사마씨의 쿠데타로 진나라가 세워진 시대를 일컫는다. 나라들이 워낙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져 하나의 왕조가 진득하니 제 땅을 지켰던 적이 없다. 에도 말한 바 있듯 조조의 위나라는 법가를 통치 이념으로 서족 관리들이 살림을 꾸려나가는 나라였다. 조조가 만고의 간웅이니 뭐니 당대의 정치적 몰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