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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책 (719)
deadPXsociety
이 책은 코로나 시기에 나와 공간의 미래에 대해 얘기한다. 이 대단한 전염병은 우리의 시대를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 시대로 바꿔놓았다. 상업 중심지에 불멸의 성전처럼 서 있던 대형 쇼핑몰들은 폐허가 되었고 일 년에 일조씩 적자를 내던 쿠팡은 유통 거물 신세계를 가뿐히 즈려밟았다. 공간이 해체되면서 권력이 재분배된 것이다. 코로나가 몰고 온 재택근무 열풍은 꿈에 그리던 일상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처럼 보였다. 출퇴근이 사라지면 기업은 더 이상 중심가의 노른자땅 위에 서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직주가 얼마나 근접하냐에 따라 수억 원씩 차이가 나는 아파트의 가치도 재평가가 불가피하다. 대도시에 모여있을 필요가 사라진 사람들은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점점이 흩어져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도시는 사라졌는..
은 전형적인 하루키 소설이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데 등장인물들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그 '환상'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루키는 단단하게만 보이는 우리 세계가 실제로는 얼마나 놀라운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메타포를 이용하여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예컨대 우리 지구는 초속 30km로 우주 공간을 떠돌고 있는데 약간의 덜컹거림은커녕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도 받지 못한다. 초속 30km라니. 총알의 속도가 초속 300m니까, 이보다 100배 빠른 공 위에 올라 우주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멈춰 서서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인식의 성긴 그물망을 촘촘히 당겨 당연하게 흘러나가던 것들을 잡아채야 한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이야기로 바꿔낸다. 알쏭달쏭한 메타포를 입혀서. ..
스웨덴에 살고 있는 아랍계 청년 아모르가 있다. 클럽에서 밤새 놀고 다음 날 깼더니 전화와 메시지가 수십 통 와 있었다. "너 봤어? 자동차 폭탄이 있었대. 다이너마이트로 꽉 차 있었대" 스톡홀름 시내 한 복판에서 폭탄테러가 벌어졌다. 용의자는 작고 긴 머리에 턱수염이 있는 아랍계 남자였다. "너 어젯밤에 뭐 했어?" "기억이 안 나.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토를 좀 했지" "아모르? 아모르?" 아모르에게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절친 샤비에게서, 사촌에게서, 카롤리나에게서. 카롤리나의 동물권익보호 단체에서 일하는 여자였다. 카롤리나는 아모르에게 정기 기부를 권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모르는 카롤리나라는 이름이 가짜라는 걸 알았다. 아모르가 카롤리나에게 물었다. "진짜 이름이 뭐예요?..
LGBTQ가 대체 뭐가 문제인가? LGBTQ란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그리고 이들 모두를 통칭하는 퀴어를 의미한다. 아직도 여전히 보수적인 사회 문화 탓에 대놓고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 주변엔 상당히 많은 LGBTQ가 있다. 이미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일하고, 먹고, 웃으며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LGBTQ임을 알았다고 같이 일하고, 먹고 웃었던 우리의 태도가 달라질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비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와 잘 지냈던 직장 동료가 사실은 강간범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땐? LGBTQ는 범죄자가 아니다. 그저 성적취향이 다른 사람일 뿐이다. 당신이 남자고, 당신과 아주 친밀하게 지냈던 남자동료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하자. 당신은 도대체 무엇이 두려..
는 유라시아의 구세계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 이유를 탐구하는 책이다. 놀라운 두께에 질려버릴 수도 있지만 내용은 명쾌하다. 주장을 전개하고 예상되는 반박에 재반박하는 구조를 가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내용이 있고, 자연스럽게 두꺼워졌을 뿐이다. 어려운 내용은 정말 하나도 없다. 유라시아가 타 대륙보다 더 발전한 문명을 가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잉여농산물의 생산이었다. 잉여생산물은 필연적으로 분배의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복잡한 사회시스템 예컨대 법, 정치, 행정, 군사, 종교, 문자 등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조직을 운영해 본 사람은 3명만 모여도 엄청난 갈등이 생긴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수 만, 수십 만 명을 하나의 국가로 묶어두기 위해선 정교한 사회..
이 책은 얼핏 심리학 도서로도 보인다. 이라니,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효능감을 강화하는 주제를 다룰 것만 같다. 하지만 카를로 로벨리다. 또, 양자역학이다. 카를로 로벨리 책 중에선 독해가 가장 쉬웠지만 그렇다고 내용까지 쉬운 건 아니었다. 로벨리는 이 책에서 기존의 양자역학이 이 세계의 실재에 대해 서술한 것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예컨대 이 세상을 물질의 파동으로 본 슈뢰딩거의 생각이나 관찰이 갖는 의미, 파동 붕괴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탐구하다 덧붙인 평행우주 같은 관점들이다. 저자는 이 모든 생각들이 양자 세계의 기이함을 어떻게 해서든 설명하기 위해 끼워 맞춘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세계의 실재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은 ..
시에는 대단한 다짐도 없고 그저 마음속을 떠돌아다니다 몸속 어딘가에서 딱지가 진, 생이라면 너무 거창하고, 삶이라면 조금 오그라들지만 그렇다고 생활이라고 내버릴 수는 없는, "혼잣말을 그만두지 못해서 그 마음에 내내 귀를 기울이는" 결과들이 가라앉아 있다. 홀로 어둠을 헤아리는 기분으로 혼잣말이 징검다리처럼 놓인 단어 하나하나를 건너 시인에게 다가간다.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미끄러지고 종종 물에 빠지는 일이다. 걷잡을 수 없이 젖어가는 마음 안에 "그 소리를 들인다". 들였던 소리가 빠져나 갈 때쯤 이제는 눈보라가 몰려와 젖은 마음을 차갑게 얼리는데, 그 빈 마음이 용기를 내어 묻는다. 바다는 잘 있습니까? 약속하지 않은 사람을 행여나 만날까 싶어 하루종일 터미널에 앉아있는 마음을 돌아본다. 시인은..
미키 세븐은 일곱 번째 미키다. 여섯 번을 죽었고 일곱 번 태어났다. 기억은 주기적으로 업로드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키와 미키 사이에 존재의 단절이 일어난다. 미키의 기억을 온전히 다운로드하지 못한 미키를 이전의 미키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를 우리라고 정의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기억, 정신, 몸, 외모, DNA. 이 중에서 가장 먼저 탈락한 후보는 외모다. 나와 똑같은 일란성쌍둥이가, 아무리 똑같이 생겨도 내가 아니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음은 몸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세포. 그 집합이 곧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해 보자. 하지만 우리가 태어났을 때 갖고 있었던 세포 중 아직까지 존재하는 건 단 한 개도 없다. 어느 시점에서 그들은 모두 죽었고 새로운 세포로 대체됐..
가 다루는 내용은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너무나 유명한 게임이라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정리를 한 번 해보자. 당신과 어떤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두 사람은 각각 협력이나 불협을 택할 수 있다. 둘 모두 협력을 택하면 쌀을 3포대씩 가져가고 한쪽이 협력, 다른 쪽이 불협을 택하면 불협 쪽이 5포대, 다른 쪽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둘 다 불협을 택하면 각각 1포대를 얻는다. 선택에 따른 경우의 수는 협력-협력, 협력-불협, 불협-협력, 불협-불협 총 네 가지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상대방이 협력자든 양아치든 당신은 무조건 '불협'을 택해야 이득이다. 불협-협력은 5포대, 불협-불협은 1포대의 가능성이 생기지만 반대는 3포대와 0포대만이 가능하기 ..
소서노는 정말 비범한 인물이다. 우리 고대사에서 무력과 문화로 가장 막강했던 두 나라를 건국한 여자. 기개와 야심, 능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졸본부여 국왕의 '딸'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시조인 고대 왕국이 반드시 존재했을 것이다. 이 책은 소서노를 고구려의 실질적 여왕으로, 백제의 초대 국왕으로 여긴다. 꽤 타당한 면이 있다. 소서노의 첫 번째 남편은 우태였다. 동부여의 왕 해부루의 서손이었던 그는 출신 탓에 중용되지 못했고 소문이 자자했던 소서노를 몰래 만나 결혼을 한다. 둘이 낳은 아들이 바로 백제의 비류와 온조다. 서손이긴 했으나 엄연히 한 나라의 왕손과 허락 없이 통혼한 졸본부여는 평화를 위해 우태를 차기 국왕으로 세운다. 이것이 소서노의 첫 번째 양보였다. 우태는 일찍 죽는다. 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