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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책 (720)
deadPXsociety
이 책은 이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고 부른 에서 기획한 단편선이다. 는 1953년 출판 산업과 문학 교류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창간했다. 영문학을 다뤘으며 계간지였다. 창간 이후 7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작가의 경력, 국적,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한 소설들을 편집해왔다. 어느 날 는 웬만한 출판사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기획한다. 열다섯 명의 작가에게 그동안 에 실렸던 단편소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한 편을 고르고 그 소설이 탁월한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한 것이다.(자기 소설이 아니라 다른 작가의 소설을 고른 것이다) 물론, 보는 이야 즐거운 기획이지만 선택당할 소설의 작가들이 이런 기획에 흔쾌히 동의했을지는 의문이다. 문학을 해설하는 일에 기겁하는 작가들이..
는 197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언론인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공포 소설이다. 작가에 따르면 공포 소설은 원체 넓은 범주라서 호러와 환상, 다크 픽션과 네오고딕 등 많은 명칭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작가 스스로 공포라 지칭한 것을 한국어 판에서 굳이 고딕으로 소개하는 것을 보면 진지한 한국 문학계의 양장본 책에 새기기에 '공포'라는 장르가 어울리지 않았나 보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불법 서적으로나 유통되는 공포 이야기로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어떻게 세계적인 소설가가 될 수 있었을까? 비슷한 차별을 받고 있는 SF를 돌아보자. SF에 노벨상이 있었다면 첫 번째로 받았을 거라 칭해지는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들은 세상의 편견과 인간의 불완전성을 SF적 상상력을 동원해 탁월하게 은유한다. ..
박준이 돌아왔다. 드문드문 해가 비치는 안개 낀 숲 속에서 부슬비를 맞는 기분은 여전하다. 그리워하는 이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리워하는 사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채 꾹꾹 눌러 담아 애먼 곳에 풀어놓는 것을 들으며, 나는 그 말이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그리움에 따뜻해진다. 태어날 때부터 노인이었던 이 남자는 함부로 지껄인다는 말의 뜻을 알지 못한다. 모나고 성긴 돌들을 가슴속에서 벼려 티 하나 없이 맑은 쟁반에 담아 내온다. 박준의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워지는 이유는 내 언어의 못남 때문이기도, 한 때는 나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늙은이는 언제나 나를 과거로 데리고 간다. 변해버린 내 모습을 탓하지 않고, 그저 손을 ..
철학의 쓸모가 모조리 의심받는 이 세상에서도 철학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 모리스 리즐링의 말처럼 "결국 인생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두 개의 물리력에 속박당한 채 평생을 살아간다. 저주와 같은 이 힘은 중력과 시간이다. 특히 철학에 양분을 제공하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우리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며 끈질기게 죽음을 향해 끌고 간다. 미약해 보였던 그 힘은 점점 강해지며 우리의 발걸음을 느리게 한다. 철학은 그 느려진 속도를 체험하는 순간 태어난다. 시간은 우리 앞에 문득 마지막 장의 장막을 펼쳐놓는다. 장막은 굳게 닫혀 있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마지막'이라는 벌레는 온 ..
카르스텐 두세의 는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전례를 망설임 없이 따르는 소설이다. 요쉬카 브라이트너라는 신비로운 남자에게 명상을 배운 뒤 자신이 일하던 로펌의 대표들과 마피아 보스를 입맛대로 요리하던 비요른. 자신을 협박하던 마피아를 자동차 트렁크에 유인해 땡볕에 말려 죽인 뒤 분쇄기에 갈아 물고기 밥으로 던져준 남자. 명상과 살인이라는 섞일 수 없는 두 빛이 운명처럼 교차하며 지금껏 보지 못한 색을 발하던 이야기가 바로 전작 이었다. 에 없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구성과 유머다. 하나하나 떼어 놓은 장면들은 21세기에 사는 독일 유명 로펌의 변호사가 겪기에는 말도 안 될 정도로 하드보일드 하지만 그것들은 충분히 그럴싸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비요른의 능청스러운 유머는 보기 싫은 균열..
넷플릭스에서 가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열광했다. 내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해의 난도가 높을수록 그 대상은 나를 더 강력하게 끌어당겼다. 최근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형 연쇄살인마들의 범죄 동기를 이해하는 건 사실상 불가하다. 그들에겐 아무런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살인을 트리거링하는 자극이 있을 뿐이고, 마치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졸음이 와 잠을 자고, 배고파 밥을 먹는 것처럼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최초의 연쇄살인마들이 대대적 수색과 수사에도 쉽게 잡히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동기' 때문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비과학적 수사 방식과 낡은 경찰 조직의 경직성에 그 원인을 돌리곤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연쇄살인은 말 그대로 전례가 없던 사건이었다. 특히..
홀든 콜필드의 목소리를 20년 만에 다시 들었다. 두서없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샐린저의 문체가 얼마나 독특한지 감탄할 기회는 번역서를 읽는 한국인에게는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남은 건 도저히 듣고 있을 이유가 없는 푸념, 걱정, 광기인데 이것들이 암시하는 메타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자기마저 이해할 수 없는 홀든 콜필드처럼, 나도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 건 20년 전보다 훨씬 읽기가 쉬웠다는 점이다. 이상한 일이다. 오히려 콜필드와 상황이 비슷했던 건 그때가 아니었나. 흔들리는 세상에, 사실 외부 세계는 언제나 굳건했고 흔들리는 건 내 자아였겠지만,..
우리가 통칭 도자기라 부르는 말은 사실 도기와 자기가 합쳐진 단어다. 차이를 구분하는 법은 동양과 서양이 좀 다르다. 중국에서는 철 함량이 3% 이상인 점토(흔히 보는 붉은색 진흙)를 사용해 900도 내외에서 구운 것을 말하고, 자기는 철 함량이 3% 이하인 자토(이 중에 가장 유명한 게 고령토다. 흰색을 띤다)로 빚어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운 것을 말한다. 반면 서양의 구분은 세 가지로 나뉜다. 가소성이 높은 점토를 이용해 800~1000도 사이에서 구운 것을 도기(Earthenware), 불순물을 많이 함유한 흙에 유약을 바르지 않고 1,200~1,300도 사이에서 구운 것을 석기(Stoneware), 고령토와 백돈자(백운모로 구성된 유리질 암석)를 혼합한 재료로 빚어 1,280도 이상에서 구..
대한민국과 팔레스타인은 역사의 비극이라는 장르에서 수많은 장면들을 공유한다. 우선 격동기에 식민지배를 당했다는 사실이 그렇다. 물론 팔레스타인은 당시 이슬람 세계를 완전 정복하여 사실상 단일 국가와 비슷했던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다 그 대상이 영국으로 마지막엔 이스라엘로 바뀌었고 대한민국은 일본 한 나라에 의해 불법, 강제적 주권 침탈을 당했다는 차이는 있다. 팔레스타인의 원수는 그래도 영국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뒤 오스만 튀르크는 갈갈이 찢어졌고 그 일부는 영국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영국인은 아랍 대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동시에 유대인 시온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 땅에 모으기 시작한다. 유럽에 나치가 등장하고 유대인 박해가..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스낵 역사다.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시간을 훑으며 이름난 간신들을 탈탈 털어냈다. 대한민국의 의무교육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서경천도의 주인공 묘청, 고려말의 신돈, 정조의 남자 홍국영, 영애를 꼭두각시로 삼은 최순실, 망국의 주범 이완용, 이름만 들어도 가슴속에 불이 번지는 사람도, 왜 이 이 자는 간신이 되었나 곰곰이 들여다보게 되는 사람도 있다. 작가는 간신의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눈다. 첫째, 이른바 '왕의 남자'로 일컬어지는 측근형이다. 정조의 남자 홍국영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측근으로 시작한 이들이 왕권을 넘볼 정도로 권세를 부리는 교만형이다. 이자겸과 한명회 같은 이들이 여기에 속하며 대개 왕위 찬탈을 도와 공신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셋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