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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책 (720)
deadPXsociety
의 주인 박경리 작가는 1926년에 태어났다. 자기 인생의 첫 20년을 오로지 일제 강점기하에서 보낸 것이다. 그 시절을 직접 체험한 작가가 하는 말은, 그때는 이러저러했다고 들어서 아는 사람이 하는 말과는 차원이 다른 박력이 느껴진다. 물론 그 역사가 너무 옛날이야기가 된 사람들과, 그것을 배워서 아는 사람들에겐 피를 토하는 작가의 심경이 피상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때문에 종종 피해자들은 가해자뿐만 아니라 심지어 같은 민족에게서도 이해할 수 없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당한 건 알겠는데 너무 옛날 얘기잖아. 이제는 미래를 봐야지.'혹은 '뺏기고 짓밟힌 게 뭐 자랑이라고 떠들어. 창피한 줄을 알아.' 같은. 가해자의 입장은 이해한다. 시인하고 사죄하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일 테니까. 솔직히 상상조차 ..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 몇 가지 문제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학창 시절 주입된 역사 관점이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는 게 문제다. 이런 걸 보면 사람들이 왜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왜곡된 역사 교과서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것 같아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국사가 자국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쓰이는 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한쪽으로 기울어져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이 단군왕검 이래 반만년을 이어온 단일 민족이라는 신화를 주입받았다. 이 탓에 이방인을 배척하고 하대하는 풍조가 만연한데, 특히 혼혈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얼마 전 발생한 9급 공무원 욕설 사건이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았나 싶다. 외국인을 ..
유현준 교수는 상당히 합리적인 사람이다. 말투나 표정에선 오만함이 그득한데, 하는 얘기가 틀린 말이 하나도 없고 주어진 제약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창의력이란 원래 밑도 끝도 없이 상상력을 펼치는 게 아니라 한계를 돌파하여 재정의하는 능력이다. 저자가 하는 얘기들에 무리 없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선언이 아닌 제안. 충분히 실현 가능한 해결책. 저자가 건축을 통해 추구하려는 사회적 가치는 다양성과 소통이다. 아파트가 문제인가? 가끔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될 때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모두가 '똑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다. 똑같아서 이득이 되는 경우는 닭장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 얼핏 소통과 건축은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김시덕 교수의 책들은 언제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 든다. 너는 대체 누구의 편이냐는 질문이 얼마나 천박하고 폭력적인지 알면서도 순간순간 그에게 이 말을 묻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다. 는 2015년에 펴낸 책을 컬러로 다시 찍은 책이다. 그는 이 책의 속지에 친필로 이렇게 새겨 넣었다. '산업화와 민주화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그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역사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는 것 같다. 그 결과 이 책은 참신한 시각을 견지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관점이 대단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진정한 발전의 원동력은 언제나 차가운 자기 인식에 그 뿌리를 대고 있다. 대한민국은 수천 년 전에 존재했던 그 모든 고대 국가를 단일 민족에 의한 다른 왕조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세계사에서는커녕 동아시아에서..
저자 차경진은 현대를 경험의 시대로 정의한다.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하기보다 '의미'를 구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의미를 구매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쉽게는 가심비를 떠올리면 된다. 가격이 얼마든 나에게 만족을 줬으면 타당하다는 것이다. 가성비를 따지는 영역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큰돈은 확실히 가심비의 세계에서 돌고 있는 것 같다. 고객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려면 필요보다는 욕망을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그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고객은 어떤 맥락에서 우리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가? 과거에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나 기타 사용자 조사를 통해 그것들을 밝혀냈다. 아주 무용한 건 아니지만 이런 방법들은 사용자의 욕망을 본인에게서 들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먼저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당신은 클래식을 즐겨 듣습니까? 그럼요. 제가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쇼팽도 있고, 드비쉬도 괜찮고, 가끔은 바그너를 청하기도 합니다, 라는 수준으로는 곤란하다. 하루키의 LP 편력은 이미 범인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상태다. 비록 재즈가 70 클래식이 20 록과 팝이 10이라지만 총량 자체가 어마어마해 20만 얘기해도 책 한 권이 나온다. 총 100곡을 소개하는데 한 곡 당 적어도 4개의 앨범을 덧붙이니까 그 양이 평생을 들어도 남을 정도다.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는 나도 여태껏 들어본 앨범 수를 세면 글쎄, 100개를 넘기가 힘들지 않을까? 아무래도 요즘엔 단곡을 중심으로 들으니까. 그러니 하루키의 클래식에 공감하려면 웬만한 경험으로는 부족..
기묘한 이야기다. 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분류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매우 정치적인 동시에 개인적이고, 에세이면서 과학책이고, 전기이면서 미스터리 스릴러 기도하다. 틀에 매이지 않는 이 책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유유자적 고정관념의 바위를 피해 다니며 자신만의 독자적 장르를 만들어간다. 정말로 독특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를 빼고 보면 마이클 조던의 별칭인가 싶을 정도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이 남자는,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 스탠퍼드의 초대 학장이다. 물론 당시의 스탠퍼드가 지금 같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설립자는 캘리포니아에서 매우 수상한 방법으로 떼돈을 번 부부였고 대학을 설립한 취지에도 약간 구린내가 풍..
를 선택한 건 '아작'과 '부커상'이라는 미스 매치 때문이었다. 아작에서 나온 소설이 부커상에 노미네이션 되다니, 내가 아는 아작은 그런 데가 아닌데... 물론 아작의 책들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읽어온, 이 임프린트에서 출간한 책들은 대개 SF였기 때문이다. SF가 뭐 어때서? 흠, 그것도 맞는 말이군. 는 SF가 아니었고 얼마 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수상한다면 한강 이후 한국 문학계가 내디딘 또 하나의 중요한 발자취가 될 것이다. 한국 문학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는 건 어쨌든 좋은 일이다. 그들의 심사평에 동의하든 말든. 그 의도가 어쨌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왜 이 소설에 주목했는지에 대해선 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왜 이런 책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서와 문화와 전통이 다..
는 하루키가 들려주는 최초의 사적인 이야기다. 그 수많은 수필을 발표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꼭꼭 감춰두었던 하루키다. 물론 위스키나 달리기 클래식 음악처럼 본인의 취향을 드러낸 적은 많다. 그러나 그 자신의 인간관계, 그러니까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친하고 누구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한 적이 없다. 이 책에서 하루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아버지는 1917년 12월 1일 교토시 사쿄 구 아와타쿠치에 있는 '안요지'라는 정토종 절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불운한 세대였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까. 아버지는 두 번이나 징집되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큰 부상 없이 종전을 맞았다. 어린 시절 하루키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매일같이..
오랜만에 조선을 떠나 다른 땅과 시간을 구경하니 흥미가 남달랐다. 이제는 남의 땅이 되어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분노가 집중을 더했을 것이다. 당시에 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같을지는 미지수다. 땅의 모양과 크기, 산과 강의 구성, 기후부터가 다르다. 우리가 만약 그 시간대로 날아가 그들과 만날 수 있다면, 그럼에도 한 핏줄임을 의심할 수 없는 표식을 서로의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드문드문 완벽하지는 않아도 서로의 말을 알아듣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을까? 당시 지도를 보면 고구려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단 두 개의 나라와 마주 보고 있는 지금도 이렇게 숨이 막히는데, 그 많은 나라들과 전쟁을 치르고 외교를 맺고 강토를 관리해왔을 그들..